주취 감경이 정말 필요할까?

지난 주 쯤인가 주취 감경 폐지 청원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다. 주취 감경이란 술에 취해서 범죄를 저질렀을 때, 심신미약을 인정해서 형량을 줄여주는 것을 말한다. 최근에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주취 감경으로 형량을 적게 받은 조두순의 출소가 많이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슈가 되면서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 있다.

나도 주취 감경 폐지 청원에 서명을 했기 때문에, 추이를 약간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20만이 넘었기 때문에 청와대에서는 12월 6일 입장을 밝혔습니다.

조 수석은 “현행법상 주취감형이라는 규정은 없으나 형법 제10조 심신장애인 조항 등이 음주 범죄에 적용될 수 있다”며 “조두순 사건 이후 성폭력특례법이 강화돼 음주 성범죄에는 감경 규정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성범죄의 경우 ‘술을 먹고 범행을 한다고 해서 봐주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이어 성범죄 외의 다른 범죄에 대해서도 일괄적으로 ‘주취감경’을 적용하지 않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 조항은 음주로 인한 감경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감경 사항에 관한 규정이어서 그 규정 자체를 삭제하는 것은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아예 음주를 심신장애 범주에서 제외하는 입법 논의도 시작될 전망”이라며 “자의로 음주 등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범죄행위에 대해 감형할 수 없도록 한 형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관련 공청회 등을 통해 사회적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내용상으로 보았을 때, 현재 주취감경에 쓰이고 있는 법 규정은 주취 감경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일반적인 심신미약 상태에 대한 것을 다루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다만, 심신미약 상태에 이르게하는 작용 중의 하나로 음주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이 됩니다.

주취 감경에 대해서 신중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주취 감경이 특히 성범죄에서는 폐지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2013년 6월 성폭력 특례법이 개정되면서 성범죄에 관한 한 판사가 재량에 따라 음주나 약물로 인한 심신미약 주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외의 범죄에서는 여전히 술에 취했다는 것이 중요한 고려 사항이라는 점입니다.

지난해 3월 창원지법 전주지원은 만취 상태에서 단독 주택에 침입해 잠자던 60대 남성을 이유 없이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20대 강모씨에게 심신미약을 이유로 형을 감경해 징역 15년 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다른 문제하나는 주취 감경 고려의 기본값(default)이 주취 감경을 적용한다는 것이고, 필요에 따라 하지 않을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기본값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고, 판사라고 해서 특별히 다르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주취 감경을 적용하지 않는 것에 추가적인 고민과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결국은 크게 이슈가 될 만한 문제가 없다면 주취 감경을 기본으로 적용하려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주취 감경을 없애자는 것이 심신미약 규정을 아예 없애버리자는 것은 아닙니다. 기사에도 나온 것처럼 음주를 심신미약 인정 사유에서 배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입니다. 일단 술은 여타 약물에 비해 구하기가 쉬워서 추후 법적 책임을 줄이기 위해 마시기가 쉽고, 본인의 주량을 잘 파악하고 있다면, 의학적으로는 사리분별이 어려울 만큼 취한 것으로 보이지만, 당사자는 여러 예리한 판단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수준을 유지하기가 아주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음주를 심신미약 사유에서 배제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초범이거나 죄를 충분히 뉘우치고 있다고 판단되면 형을 어느정도 감해 주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형을 기본으로 인정해주지 말고, 기본적으로는 형량을 모두 인정하되, 초범 여부와 죄를 뉘우치는 정도에 따라 감형을 특별히 해주는 정도 만으로도 말그대로 술 먹고한 실수에 대한 배려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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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book과 프라이버시

페이스북이 개인 정보에 대해서 소중하게 생각하고 최대한 철저하게 보호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거의 모든 인터넷 기반의 서비스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합니다. Google을 통해 상당수의 검색을 하고, 아이폰에 약간의 싫증을 느끼면서도 안드로이드를 꺼리는 이유 중의 하나는 Big Brother가 된 구글에 대한 약간의 찝찝함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애플은 뭐가 다르냐?라고 했을 때,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점은 똑같지만, 목적의 달성 방법에 대해서 애플은 제품과 서비스 매출, 구글은 광고 매출에 더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에, 본인들 돈벌이를 위해서라도 애플이 개인정보 보호에 좀더 신경쓸 거라고 믿는 면도 있습니다.

그나마 하드웨어와 클라우드 등의 서비스 매출이 조금이나마 있는 구글에 비해서 페이스북은 2016년 기준 276억 달러의 매출 중에서 269억 달러가 광고에서 나와서 무려 97.3%의 매출이 광고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페이스북이 광고매출을 증대시키는 가장 주요한 방안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죠. 사람들을 더 많이 연결하기 위해서, 페이스북은 사람들이 자기자신에 대해서 더 많이 공유하도록 하고, 그 사람이 알만한 사람을 여러 방식으로 추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죠.

지난 수요일(2017년 10월 11일) Gizmodo에 나온 기사는 이러한 문제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기사의 제목은 페이스북이 성산업에 일하는 사람의 정체를 일반에 드러낸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야 불법이니 말할 것도 없지만, 어쨋든 그 산업에 종사하는 것이 드러내고 할 만한 일은 아니겠지요. 그래서 이 사람들은 두 개의 완전히 분리된 계정을 만들거나, 아니면 필요에 따른 계정 하나만을 만들어서 업무에 쓴다고 합니다. 문제는 어느 순간 발생했습니다.

일반인으로 사용하고 있는 계정에 고객알 수도 있는 사람 (People You May Know)으로 뜬다는 것이죠. 인터뷰한 여성은 두 계정의 접점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어째서 그런 추천을 받은 것인지조차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성인 채널을 운영하는 사람도 업무상 페이스북 계정을 운영할 수 밖에 없는데, 지인이나 친척 중에 신규 가입자가 있으면 어느순간 추천인으로 뜰 수 있어서, 주기적으로 성 따위를 검색해서 차단하는 것이 일이라고 하네요.

물론 이런 사례는 극단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는 페이스북에서 사용하는 알고리즘에 대해서 전혀 알 수 없고, 일단 페이스북을 쓰는 한 여기서 벗어날 방법도 마땅치 않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점점 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선택지보다는 삶에 필수적인 요소로 여기고 있습니다.

저도 페이스북을 자주 사용하진 않고, 가끔 기사 공유하고 친구들 소식 보는 정도로만 쓰는데요. 별로 쓰지도 않으면서 가끔 찝찝하기도 해서 계정을 정지할까도 생각해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페이스북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소식이 있다보니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에서 공식적으로 알 수도 있는 사람 기능을 끌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페이스북에서는 이 기능을 끄는 것이 사람들에게 그다지 유용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임시방편이긴 하지만 어중이 떠중이들에게 내가 친구로 추천되는 것이 싫다면, 써볼만한 방법이 있습니다.

“People can always control who can send them friend requests by visiting their account settings,” said the spokesperson. “If they select ‘no one,’ they won’t appear in others’ People You May Know.”

말 그대로 친구 추천 기능에서 “누구도 추천받지 않겠다”고 선택하면, 다른 사람의 알 수도 있는 사람에도 내 이름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물론, 혹여 정말 연결되고 싶은 사람이 나중에 페이스북에 가입했을 때, 추천인에 뜨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감수해야 합니다.

그 외에도 페이스북의 개인설정은 꽤나 복잡한 것으로 악명 높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설정에 들어가서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많은 부분들을 제한해 놓고 있는데, 가끔 설정을 다시 바꾸려고 그 부분을 찾다보면 엄청나게 헤매기도 합니다. 그 만큼 복잡하긴 하지만, 한 번 쯤은 페이스북 설정에 들어가서 여러 항목들을 찬찬히 살펴보시길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페이스북을 포기할 수는 없더라도, 모든 것을 양보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지겨운 일에 흥미를 느끼는 법

나름대로 성장하고 일을 해서 밥벌이를 하려면 꾸준히 해야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건 나를 포함해서 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해야하는 일들이 지겹기도 하거니와 정말 하기 싫다고 느껴진다는 것인데요. Harvard Business Review에서 딱 저같은 사람들을 위한 글을 한 편 올렸습니다.

크게 나눠서 동기부여를 찾아라, 뇌에서 느끼는 고통을 극복해라 등의 꼭지로 글을 썼는데요. 그 중에서는 특히 한 번 만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절대적으로 정상적인 일이라는 말이 와 닿습니다.

The fact that no one had ever mentioned this simple idea, that “it’s normal not to understand,” was a big reason for my early failure at math. I genuinely thought any new concept I faced in math should just “click” instantly. Since it didn’t, I chalked it up to my having no talent for math and quit trying.

한 번에 무언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하지만 수업을 들으면서, 책을 읽으면서 한 번 슥 읽어보고는 나는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참 많죠. 그러고는 얼마가지 않아 사실 이해 못했다고 깨닫거나, 기억이 잘 나지 않으면 실망해버리기도 하고, 때로 남들은 이해했는데 나는 못했다고 생각해서 포기해 버리기도 합니다.

사실 그럴 필요 없는데 말이에요.


부차적이지만, 원글의 글쓴이도 포모도로 테크닉을 유용하게 생각하네요. 회사 생활하다보면 방해요소가 자주 생겨서 아쉬운 것은 있지만 분명 유용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영복의 “강의”를 읽고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 신영복 선생이 쓴 강의를 읽었습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사실 앞부분은 명확히 생각이 나지 않는 면도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어떠한 책이었다’하는 나름의 인상을 중심으로 독후감을 써두려 합니다.

책의 부제는 나의 동양 고전 독법으로 되어 있는데, 말 그대로 시경, 서경과 주역을 시작으로 논어, 맹자, 노자와 장자를 거쳐서 법가의 이론까지를 찬찬히 풀어서 설명해줍니다. 신영복 선생이 실제 대학교에서 교양 수업으로 강의하신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보니, 쉽게 읽히지는 않더라도 꾸역꾸역 읽어나갈만 합니다.

다만, 순수하게 동양 철학에 대한 입문서로 보기에는 어쩌면 조금 적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각각의 동양 고전에 대한 통상적인 이해를 쉽게 풀어 놓기보다, 까마득한 과거에 쓰여진 책을 지금 어떻게 읽고 해석할지에 대한 고민에 더욱 방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목적을 (그리고 시간적 제약도) 감안하여 각 고전을 전체적으로 해석하기 보다 신영복 선생이 각각의 고전을 해석하고 현 시대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받아들임에 있어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판단한 문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나름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동양 고전에 입문할 수 있게 해주는 의도가 명확한 입문서로 기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자가 오랜 글을 소개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관계입니다. 나와 너의 관계이고, 우리와 저들의 관계이기도 하면서 세상 만물 서로 간의 관계이기도 합니다. 처음에 서양 철학과 동양의 차이에 대해서, 서양은 존재론에 기반을 하고 있는 반면에 동양은 관계론에 더 높은 비중을 두고 있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실제 소개된 고전의 문구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사항들은 대체로 그러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동시에 생각이 드는 것은 신영복 선생은 동양 고전을 관계라는 관점에서 소개해주고 있는 것일 뿐만아니라, 오히려 고전을 통해서 지금 우리 시대에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피력하고 계시다는 거였습니다.

수천년 전에 쓰인 글이 지금 얼마나 큰 울림을 가질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도구와 문명 수준이 달라져도, 사람의 행동이 큰 틀에서는 어느 정도 반복된다는 것을 인정하면, 관계와 원리에 대한 과거의 숱한 고민들은 지금도 충분한 생각할 거리를 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짧게 본다해도 벌써 2004년에 쓰여져서 10년을 훌쩍 넘긴 이 책을 지금 읽으면서도, 그토록 과거에 있었던 고민과 사유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현재성을 가지고 있으니 만큼 이 책에서 지금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소개한 고전들도 충분한 현재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양 고전에 대해서 무지한 채, 저처럼 한 번 맛만 살짝 볼까 싶은 사람이 읽기에도 좋고, 이미 많이 고민해 본 후에 신선한 생각의 바람의 쐬고 싶은 분이 읽기에도 무리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 비행기에서는 절대 음식을 먹지 말아야할까

블룸버그에서 출장 등으로 자주 비행기로 여행을 해야하는 사람들을 위한 팁을 정리 했습니다. Melissa Biggs Bradley 씨와의 인터뷰인데, 이 분은 거의 1년에 석달 반에서 넉달 정도를 출장다니고 거리는 20만 마일 (km로 하면 32만km 정도 되겠네요)을 날아다닌다고 합니다.

제목에서 말하는 대로 가장 중요한 팁은 비행하면서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입니다. 아주 장거리 비행을 할 때도 물 정도만 마셔야 한다고 하네요. 그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 고도가 아주 높은 곳에서는 소화기가 거의 기능을 멈춘다고 합니다. 그러니 비행기에서 무언가를 먹으면 소화되지 않은 채 먹는대로 뱃속에 남아있다가 (그래서 비행기에서 뭔가를 먹고나면 항상 속이 더부룩한가 봅니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나면 그 때서야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무리하게 된다는 것이죠. 심지어 비행기 음식은 소금이 너무 많이 들어가고, 나중에 전자레인지로 쉽게 뎊일 수 있게 만들어져서 그다지 좋은 음식은 못된다는 것입니다. 브래들리씨는 비행기에서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비행기에서 내리면 좋은 음식으로 그 도시에서의 일정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저는 아직 기내식을 포기하기가 조금 어렵네요. 기내식과 적당한 와인과 위스키가 비행하는 재미이지 않나요?)

그리고 그 만큼 중요한 것은 배탈약을 항상 챙겨다니는 것이죠. 저는 물이나 음식 바뀌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민감한 편이 아니어서 특별히 고생한 적은 없습니다. 그래도 집 떠나있을 때, 아픈 것 만큼 서러운 일은 없죠. 심지어 배탈이 심하게 나서 제대로 먹지도 못한 다면 그건 정말 큰 일입니다. 어쩌면 일정을 다 망치게 될지도 모르니까, 언제나 상비약은 챙겨서 가야죠.

앞으로도 해외 출장을 다닐 일이 많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올해에는 해외 출장을 꽤 많이 다녀봤습니다. 아마 다음 출장에 여기 있는 몇 가지를 실험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기내식을 먹지 않는 것은 정말 큰 결심이 필요하지만요.


그리고 다음에 나오는 것들은 사실 그렇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네요. 간략히만 정리하고 넘어가겠습니다.

  1. 항상 5-스타 호텔에 묵을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가끔씩은 4-스타 호텔이 더 저렴한 가격에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니까요.
  2. 그리고 정말 최고의 호텔을 좀더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의 재벌들은 각자 소유한 스위트룸이나 별장 하나 정도는 있는데요. 이러한 별장을 빌릴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가 있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재벌의 별장을 일박에 단돈 4,000달러에 빌릴 수 있다니 거저네요…..
  3. 그리고 브래들리 씨는 해외 출장이나 여행을 갈 때 항상 Skyroam이라는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합니다. 내용을 읽어보면 우리나라에서 제공하는 무제한 데이터 로밍과 비슷한 서비스이고 가격도 비슷합니다. 하루에 10달러이거든요.

살인자의 기억법: 소설과 영화

김영하와 이 소설의 팬들에게 있어서도 영화에 대한 평가는 꽤 크게 갈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꽤 지루하다는 평가도 종종 보였지만, 그래도 김영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기에 영화는 꽤 기대하며 봤다. 어쩌면 그렇게 크게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는 재미있었고 나름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도 든다.

스포일러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스토리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소설과 영화의 전개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읽은 지 조금 오래되어서 기억이 부정확할 수도 있지만, 소설에서는 영화처럼 극 초반부터 본인이 살인자임을 밝히지 않는다.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의 담담한 독백으로 소설이 서서히 진행되어 가고, 본인이 전직 연쇄살인마임은 중반이 지나서야 담담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이 사실이 드러나고나서 다시 책 앞 부분으로 돌아가서 몇 번 다시 읽은 기억이 난다. 주인공의 정체를 알고 나서는 똑같은 독백이 다르게 읽힌 다는 것이 책의 매력 중 하나이다. 그에 반해 영화는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살인자임을 확실하게 알려준다. 그 시점에서 주인공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사실 의미가 없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끝없이 이어지는 독백으로 알려준다. 소설도 독백의 형식이기도 하고, 주인공이 살이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원래 주변에 없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관객에게 너무 친절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주인공의 정체성에 대해 서서히 깨달아가는 바 없이, 곧바로 주인공이 살인자라는 사실을 못 박아 두고 여기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래서 소설과 영화의 장르도 달라졌다. 소설에서는 결국 주인공이 오래전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 외에 확실한 사실은 없다. 나의 주변을 멤도는 그 사람은 정말 살인자인가 경찰인가. 딸은 행복한 삶을 찾았나 내가 죽여버렸나. 최근의 살인 사건은 대체 누가 저지른 일인가. 주인공의 기억이 사라져 가면서 어떤 것도 선명하게 남지 않는다.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은 범죄소설과는 꽤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기억이 사라져 갈 때 나의 정체성은 과연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 꽤 극단적인 사례를 통해서 선명하게 보여주려는 것으로 읽혀진다. 그에 반해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확연히 스릴러 물로 보여진다. 오래전 아주 많은 사람을 죽인 타고난 살인자의 감각을 가진 주인공이 본능적으로 다른 살인범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살인범으로부터 사랑하는 딸을 지키기위한 사투를 벌인다. 이야기가 복잡하게 꼬이는 것은 이 탁월한 감각을 가진 살인마가 치매라는 것. 어느 순간 때때로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여기서 치매는 더 많은 사람을 죽여서 살인에 더 능숙한 킬러와 아직 젊고 경험이 부족한 킬러가 맞부딪칠 때, 나이로 인한 체력과 더불어 두 숙적의 힘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한다.

결국 소설과 달리 영화에서 치매는 어떤 특별한 사건이라기보다 유용한 소품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영화는 두 숙적의 대결로 치닫는 단선적인 이야기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경장 “안병만” 씨의 존재도 이런 종류의 영화가 주로 가지는 주인공의 조력자로 활약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죽는 그런 클리셰로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 소설의 재미를 기대하고 영화를 본 사람들이 재미없어하는 이유가 이런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앞에도 썼지만, 나는 관객에게 너무 친절하려고 노력한 독백이 감점요인이라고 느꼈고, 함께 영화를 본 아내는 왜 굳이 개그 욕심을 부렸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소설의 그 감각을 다시 느끼고 싶다면 아마 기대와는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새로운 소재(치매)를 활용한 범죄 영화로서 보자면 정말 재밌게 만든 영화이다.

비트코인 거래소에 비트코인이 너무 많다.

블룸버그에 Bitcoin에 대한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말 그대로 Bitcoin 거래소(Exchange)에 Bitcoin이 너무 많이 있다는 내용인데요. 처음 읽으면서는 ‘아니 다른 곳도 아니고 비트코인 거래소인데, 비트코인이 많은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너무 많을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글을 조금 읽어보면 납득이 갑니다.

글은 처음에는 Dole의 LBO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요약하자면, 몇 년 전인 2013년 Dole의 LBO를 추진하면서 주식을 주당 13.5 달러에 매입을 했었는데, 그 가격이 너무 낮았으니, 지금 주당 2.74달러를 추가로 기존 주주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이 최근 내려졌습니다. 그러면서 판결은 돈을 받을 사람은 회사로 청구를 하라고 했는데요. 문제는 당시 발행주식수는 대략 3,700만 주였는데, 추가 정산을 요청한 주식수는 4,900만 주였다는 겁니다. 말 그대로 실제 주식보다 주식이 1,200만주가 더 많다고 나왔는데, 누가 거짓말을 했던 걸까요?

정답은 누구도 거짓말 하지 않았고, 사실 1,200만주 만큼은 누가 공매를 했었다는 겁니다. 누군가 시가 하락을 기대해서 주식을 빌려서 팔았고, 그 결과 3,700만 주가 발행된 주식이 전체 3,900만주가 보유되었었던 것이죠. 이렇게 되면 주식을 빌린 사람의 2.74달러는 누가 지급해줘야 할까요? 회사가? 회사는 주식을 3,700만주만 발행했는데요. 주식을 빌려서 팔았던 사람이? 그게 맞아 보이기는 한데, 그 때 팔았던 사람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요? 이것 참 골치아픈 문제가 되었습니다.

최근에 비트코인 거래소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기존에 비트코인이 있었는데요, 여기서 새로운 비트코인캐시(Bitcoin Cash)가 파생되어 나왔습니다. (기존의 비트코인은 BTC, 새로운 비트코인캐시는 BTH로 부르기로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하나였던 주식 또는 자산이 두 개로 분할되면, 분할된 두 개를 더했을 때 원래의 가치와 동일해야 할텐데, 비트코인은 조금 달랐습니다. BTH가 제법 괜찮은 가치를 인정받았거든요. 그 와중에 BTC의 가격은 거의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분할 전에 2,700달러였던 BTC는 그 가격 그대로 거래가 지속되고 있으면서, BTH 한 단위는 700달러의 가격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읽으면서 알게된 것 중 하나는 비트코인도 공매를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하긴 거래소에서 마치 주식처럼 거래되는 자산이니까 공매를 할 법 하죠. 그런데 문제는 원래 100BTC가 발행되었는데, 누가 25만큼 공매를 해서 실제 비트코인 보유자의 비트코인을 모두 더하면 125가 되면 어쩌나 하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BTH가 기존 BTC와 1:1로 발행이 되면 BTH는 100이 발행되어야 할까요. 125가 발행되어야 할까요. 만약 추가로 발행되는 25 BTH의 주인은 누구로 해야할까요. 공매한 사람들에게서 25에 해당하는 BTH의 가치만큼을 뺏어와야할까요? 만약 125개 BTC에 대해서 개당 0.8BTH를 발행한다면, 숫자는 맞출 수 있겠습니다만 다음과 같은 재정거래 문제가 발생합니다.

  1. Set up an account, borrow one bitcoin, sell it short, collect $2,700.
  2. Set up another account, buy a bitcoin, spend $2,700.
  3. When the fork happens, your long account ends up with +1 BTC and +0.8 BCH.
  4. Your short account ends up with -1 BTC and -0 BCH (because Bitfinex doesn’t require you to come up with the BCH).
  5. Net, you have $0, 0 BTC and 0.8 BCH.
  6. The 0.8 BCH were worth as much as $560.
  7. That money was totally free.

세상에 비트코인 거래소가 단 하나만 있었더라도 꽤 골치아팠을 것 같은데, 사실 비트코인 거래소는 하나가 아니죠. 한국에도 몇 개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세계 각지에 꽤 여러 개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어떤 거래소는 BTH를 발행하고, 또 어떤 거래소는 아예 BTH를 발행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위에서 나타난 재정거래 기회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인데요. 그러다 보니 또 다른 재정거래 기회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BTH를 발행하지 않는 곳에서 BTC를 빌려서, BTH를 발행하는 곳에서 보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참 답이 없는 문제라는 생각은 듭니다. 이미 지난 8월 초에 벌어진 일이니만큼 각 거래소마다 수습하느라 바쁘기도 하겠네요. 이 문제는 어떻게 하면 모두가 만족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