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만년필

시작

어느 때인가 Graf von Faber-Castel에서 나온 나무로 만들어진 만년필을 보고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편하게 살만한 가격은 아니어서 그냥 머리 한 켠에 담아두기만 했었는데, 그러다 누나가 생일 선물을 보내준다고 해서 혹시 그라폰파버카스텔의 만년필을 사줄 수 있냐고 물었다. 누나가 사준 것은 그냥 파버카스텔의 만년필이었으나 그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기에 열심히 쓰려고 했다.

쓰려고 했다는 것은, 잘 쓸 수는 없었다는 거다. 잉크를 채우는 불편함 같은 것은 상관없었으나, 만년필을 쓰려고만 하면 펜의 잉크가 말라서 힘껏 흔들어 주거나 잉크가 든 튜브의 밸브를 살짝 돌려서 펜촉 쪽으로 잉크를 흘려주거나, 물에 한 번 펜촉을 적셔줘야 했다. 회의하면서 펜을 꺼내면 막상 안나오는 일이 많아서 점점 덜쓰게 되었다.

새 펜

그러다 미니언을 좋아하는 아내의 친구에게서 저렴한 만년필을 얻게되었다. 가볍게 써봤는데, 의외로 적당히 잘 나왔다. 펜촉이 너무 거칠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파버카스텔의 만년필처럼 잉크가 마르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좀 쓰다보니 좋은 만년필에 약간 욕심이 들었다. 그렇다고 아주 좋은 것은 필요없고… 그래서 아마존을 조금 뒤져보니 LAMY의 Ruthenium이라는 이름의 펜이 보였다.

라미는 플라스틱이 많아서 좀 망설였는데, 금속 계통인 듯하여 마음에 들어 Extra Fine 펜촉으로 주문했다. 그러고 얼마 뒤에 회사에서 경력직 입사기념으로 또 EF 펜촉의 라미 만년필을 선물해줬다. 이 녀석은 짙은 회색의 플라스틱인 대신에 내 이름을 영문으로 새겨줬다. 둘 다 잉크가 마르는 일 없이 잘 써져서 요새는 이 두녀석을 들고 다니며 주력으로 사용한다.

비교

위에서 부터 차례대로 파버카스텔의 만년필, 저렴한 미니언 만년필, 아마존에서 구입한 라미와 회사에서 준 라미이다. 미니언의 경우에는 잉크가 거의 닳았는데, 잉크 카트리지를 못 찾아서 그냥 썼기에 글자가 좀 끊긴 면이 있다. 파버카스텔과 미국 라미의 EF 펜촉은 내 기준에서는 충분히 가늘어서 글씨를 쓰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진 상에서는 파버카스텔이 더 굵어 보이는데, 잠깐 사이에 잉크가 말라서 또 물에 한 번 담궈서 그렇다. 계속해서 쓰는 중에는 오히려 좀더 가는 느낌이다.

내 생각에는 오히려 너무 가늘다 보니 펜이 마르는게 아닌가 싶은 정도여서, 집에 두고 가끔 스케치 연습할 때 사용한다. 가끔이다보니 매번 펜촉에 물을 뭍혀서 쓰게된다. 위 그림에서 보다시피 획이 상당히 날카롭고 가늘게 써진다.

라미는 둘 다 EF 펜촉임에도 굵기가 다르다. 회사에서 준 것은 아무래도 한국에 들어온 그대로일텐데, 더 굵다. 한글처럼 획이 끊기는 글씨체에는 좀더 가는게 맞을텐데 왜 더 굵게 들어오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밖에는 크게 다른 것은 없다. 종이에 쓸 때도 만년필 특유의 사각사각하는 느낌 외에 거칠게 종이를 긁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사용

위에도 말했듯이 파버카스텔 만년필은 집에서 한 번씩 그림 연습 — 이라고 해봐야 한 달에 한 범도 잘 안그려서 실력은 도무지 늘지 않는다 — 할 때 쓰는 편이다. 다른 도구에 비해 더 편하거나 쓸만한 효과 같은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종이에 선을 그을 때의 그 느낌이 좋다.

라미는 펜 주머니에 담아 들고 다니면서 일상적인 필기에 사용한다. 주로 쓰는 것은 좀더 가는 촉의 라미이고, 플라스틱 라미에는 파란 잉크를 담아서 쓸 예정이다.

미니언 만년필은 지금은 쓰지 않는다. 종이 위에 선을 긋는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아서 손이 잘 가지 않는다.

광고

메일, 다시 기본으로

계기

지금 찾아보니, 2016년에 Airmail에 대한 글을 썼다. 그 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을테니, 메일 클라이언트로 에어메일을 써온 것이 벌써 3년은 된 것 같다. 그 기능을 특별히 잘 활용해온 것은 아니지만 쓰면서 크게 불편한 점도 없었기에 굳이 바꾸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떠한 이유로 과거의 메일을 검색해볼 필요가 생겼다. 에어메일에서 검색을 해봐도 결과는 나오지 않았고, 해당되는 폴더로 가서 하나하나 찾아봐도 특정 시점이 되면 더 이상 메일이 불러와지지도 않았다. 그 순간에는 모바일의 한계려니 하고, 노트북에서 Gmail로 접속해들어가 메일을 찾아냈다.

조금 지나서 생각해보니, 꼭 그렇게 검색이 안될 것 같지는 않아서 당장 몇개 클라이언트를 시험해봤다. 아웃룩은 에어메일과 검색결과가 다를 바 없었지만, Readdle에서 만든 Spark는 내가 원하는 검색결과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을 확인하고, Spark를 쓰기로 마음 먹었다.

Spark를 쓰다가 문득 생각났다. 기본 메일앱에서는 결과가 어떻게 보여질까?

그래서 한 번 테스트해보니 Spark처럼 제대로된 검색 결과를 보여준다.

예전에는

예전에 기본 메일앱을 쓰지 않고, 외부 개발자가 만든 메일앱을 기웃거린 이유는 당연히 기본앱에서 불편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1. 나는 인박스로 들어온 메일을 확인한 다음, 필요없는 것은 삭제하고 보관해둘만한 것은 보관소로 보낸다 (Archive) 기본 메일앱은 둘 중 하나만 하기는 쉽지만 두 가지를 다 하려면 번거로워진다.
  2. 특히 예전에는 종종 받은 메일을 OmniFocus나 Things같은 앱으로 보내거나, 에버노트 등에 저장해뒀다. Airmail에서는 미리 Action을 지정해두고 한 번 스와이프로 메일을 다른 앱에 보내고 보관까지 할 수 있었다. 기본 메일앱에서는 내용 전체를 복사한 다음에 해당 앱으로 가서 붙여넣기 하는 수 밖에는 없었다.
  3. 그리고 조금 더 나은 사용자화. 기본 메일앱에 비해서 내가 사용하기 조금 더 편하게 메뉴나 스와이프 액션을 바꿔둘 수 있었다. 이런 면에서는 특히 Airmail이 뛰어났다.

이런 이유로 처음 에어메일이 출시되었을 때 구입했고, 특별히 문제가 없으면 (할일 앱을 제외하고는) 그냥 정착하는 편이어서 오랫동안 에어메일을 써왔다. 그러다가 앞서 쓴 것처럼 검색결과에서 의문을 느끼고 다른 앱을 둘러보기 시작한 것이다.

난 헤비유저는 아니어서

사실 나는 그다지 헤비유저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편이어서, 에어메일의 다채로운 기능도 잘 사용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렇게 열심히 쓸일이 없었고, 몇 가지 편리한 기능만 골라서 써왔다. 그나마도 최근들어서는 더 적게 쓰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막상 기본 메일앱을 사용했을 때, 크게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예전에 불편하게 생각했던 요소가 사실 거의 그대로 남아있긴 했지만, 이제는 그게 그렇게 핵심적인 요소로 남아 있지 않게되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iOS 13(아이패드에는 iPADOS 13)을 올려서 사용해보고 있는데, 기존에 기본 메일앱을 쓰면서 불편했던 사항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여전히 메일 전체를 다른 앱으로 한 번에 보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스와이프를 통해서 삭제/아카이브를 쉽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메일 내용을 확인하다가 답장 버튼을 누르면 아래와 같이 답장/전달에 더해서 삭제, 아카이브, 정크로 보내기 등이 생긴다.

그래서

아이폰에서는 다른 메일 앱은 모두 지워버리고 기본 앱만 사용하고 있다. 아이패드에서는 비교를 위해서, 또, iOS 13의 메일앱이 아직 불안정하여, 여전히 스파크와 에어매일을 깔아두고는 있지만 곧 지워버릴 생각이다. 중요하지 않은 곳에서 굳이 복잡해야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이 다음으로는 할일 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려고 한다. 지금까지는 OmniFocus와 Things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과연 내가 할 일이 그렇게 복잡할까. 그냥 미리알림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iOS 13의 미리알림은 그 전에 아쉬웠던 사항들이 다수 해소가 되었다.

Beoplay E8, 1년 5개월

영수증을 찾아보니 내가 E8을 주문한 날짜가 2017년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휴일 제외하고 사나흘 정도 지나서 받았을테니, 이제 사용한지 1년 5개월 정도 되었다. 지금 6월이 다 지나가는 와중에 5개월이라고 한 것은 5월 중순 수리를 맡겼기 때문이고, 얼마 전에 교환품을 받은 김에 간단히 그간 쓰면서 새로 느끼게 된 것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수리를 맡기고 교체품을 받기까지 거의 한 달 정도가 걸렸다. 그 동안 번들 이어팟을 사용했는데, 줄 없는 이어폰을 사용하다가 갑자기 전화기와 내 귀가 줄로 연결되고 보니 상당히 불편했다. 역시 안 쓸 때는 몰랐지만, 한 번 알게되면 다시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 음질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만이 없다. 사실 특별히 더 좋다는 생각도 잘 들지는 않았었는데, 막상 수리를 맡기고 이어팟을 자주 듣다보니 소리가 좀더 충실하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다. 어쩌면 오픈형과 인이어 타입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 같은 맥락에서 인이어가 상대적으로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팟을 끼면 주변 소음이 너무 크게 들려서 자주 소리크기를 지나칠 정도로 높여야했다. 그러고서도 음악이나 팓캐스트가 잘 안들릴 때가 많았다.
  • 1년이 넘게 사용했지만, E8의 터치 조작은 여전히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두 번 연속의 터치를 거의 대부분 한 번의 터치로 인식한다. 그래서 다음곡으로 넘기기를 할 때, 자주 음악이 정지된다.
  • 이전 곡으로 넘기기는 왼쪽 유닛을 두 번 연속 탭해주는 것이다. 당연히 한 번에 인식하는 경우가 잘 없는데, 왼쪽 유닛을 한 번 탭하면 트랜스패런시모드가 작동해서 갑자기 외부 소리가 크게 들린다. 이전으로 넘기는 일이 많지는 않은데, 해야할 때는 그냥 전화기에서 조작한다.
  • E8의 터치부를 세 번 연속으로 탭하면 시리를 호출한다. 일단 세 번 연속으로 탭하는 것부터가 너무 어렵다. 또, 그렇게 부르면 재생중이던 음악이나 팓캐스트가 끊기기도 하고, 시간도 꽤 길게 걸리는 편이라 잘 사용하지 않는다.
  • 탭할 때 나 스스로 체득한 그나마의 팁이라면, 검지손가락으로 유닛을 받쳐주고, 엄지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겨 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유닛 위치를 기준으로 잡을 수가 있어서 탭이 제대로 될 확률이 그나마 높다.
  • 몇 번 E8을 착용하고 통화를 시도했다. 대부분 내 목소리보다 소음이 너무 크게 들린다고 하기 때문에, E8을 끼고 있다가 전화가 오면 (혹은 전화를 걸어야하면) 자연스레 한 쪽을 빼서 손에 들고 그 쪽 귀에 전화기를 가져다댄다.
  • 유닛을 빼야할 일이 있으면, 주로 오른쪽 유닛을 뺀다. 오른쪽이 주 유닛이어서 오른쪽을 빼야 음악이 멈추기 때문이다.
  • 1년 반에 가까워오다보니 재생가능 시간이 가파르게 줄어 들었다. 그래도 2시간 이상 유지가 되었는데, 어느순간 시간이 줄어들더니 2주 정도만에 1시간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아래에 다시 쓰겠지만, 메일로 문의하고 AS를 맡겼더니, 기기 문제가 맞다고 판정하고 새로운 유닛으로 교환해 주었다.
  • 한 번에 아주 오랫동안 음악을 듣는 편은 아니어서, 4시간의 배터리 타임은 불편함이 없었다. 충전도 회사 도착해서 그냥 끼워두는 편이라 특별히 귀찮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가방 없이 이어폰을 들고 나갈 때, 차징 케이스의 부피는 은근히 불편하다.
  • 운동할 때, (헬스장에서나 달리기 할 때나) E8을 착용한다. 수리를 맡긴 동안에는 운동할 때 아예 음악을 듣지 않았다. 인이어 타입이라서 그런지 귀에 잘 고정되어 빠지지 않는다. 예전, 이어팟을 귀에 꼽고 달리기를 할 때는 유닛이 자꾸 흘러내려서 여간 걸리적거리는 것이 아니었는데, 무선 이어폰(백비트 핏/H5 → E8)을 사용하면서부터는 그런 불편함에서는 해방되었다. B&O에서는 E8이 Sweat-Proof라고 하는데, 땀에 젖어서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 물론 운동하면서 땀을 많이 흘리고 나면, 폼팁이 땀에 잔뜩 젖어버릴 때가 있다. 제대로 말리지도 않고 바로 다시 착용하는 것은 좀 찝찝하긴 하다. 귀도 축축하고.

수리 후기

위에 잠깐 썼다시피 2시간 정도 듣고나서도 50% 정도의 배터리가 남아있던 E8이 어느 순간 배터리가 줄기 시작하더니, 2주가 채 지나지 않아서 1시간도 가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러면 중간에 충전을 해주더라도 달리기나 다른 운동 중에 음악이 끊겨버리고, 출,퇴근 시간도 간당간당해져서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먼저 이메일로 문의했더니, 유닛을 초기화해보고, 펌웨어를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 해보라는 답이 왔다. 펌웨어는 이미 최신이어서 유닛을 초기화해봤더니, 그래도 겨우 1시간 살짝 넘는 수준. 그래서 B&O 홈페이지에서 바로 AS를 신청했다. 신청과정에서 구매 증빙을 올리도록 되어있어서 영수증을 겨우 찾아서 올리고, 문제가 무엇인지 질문에 맞춰서 작성했다.

접수를 끝내고 나면, 이메일로 페덱스의 통관서류가 오고, 페덱스 담당자와 따로 연락해서 예약을 잡도록 한다. 페덱스로 물건을 보낼 때는, 당연히 제품(유닛과 차징케이스)과 부속물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어팁은 소모품이어서 필요 없지만, 케이블은 반드시 넣어서 보내야한다.

물건을 보내고 나면 아래처럼, 배송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틀만에 물건이 홍콩에 도착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 깜깜무소식이라는 것. 2주 정도 지난 다음에 문의해봤는데, 한 편에서는 물건 확인해서 상태 업데이트되면 알려준다고 하고, 또 다른 편에서는 물건 못 받았으니, 어서 보내라고 한다. 내 물건 어디 있냐고 전화까지하고, 메일로 한두번 실랑이를 하고서야 4주 정도 지났을 때, 이어폰 검사가 다 끝났으니, 곧 이어폰을 보내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러고는 또 이제 검사를 시작했다는 메일을 받기는 했으나 며칠 지나지 않아서 검사가 끝났고, 검사결과 제품 이상이 맞아서 새로운 제품을 보내주겠다는 메일을 받았다.


다음 주로 바뀌어야 물건을 받을 줄 알았는데, 이 처럼 물건 발송 후 이틀만에 이어폰을 받을 수 있었다. 물건을 다시 받고 나서 생활 패턴은 다시 예전처럼 돌아갔다.

하나 더, 나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서 홍콩에 직접 수리를 의뢰했는데, 물건을 다시 보내주면서 이메일을 통해 워런티 문서(PDF)를 다시 보내주었다. 내가 물건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날짜를 기준으로 다시 보증기간을 2년 — 2021년 6월 26일까지 — 늘려준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교환받은 사람은 따로 얘기를 못 들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직접 교환이 더 유리할 수 있겠다.

나는 원래는 교환품을 받으면, 미개봉 새제품 정도로 팔고 다른 것을 써볼까 했는데, 워런티가 연장된 것을 보고 그냥 현 제품을 주욱 쓰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이폰 6S Plus, 디스플레이와 배터리 교체

전화기를 살짝 떨어뜨렸다.

기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참에 허벅지 높이도 안되는 곳에서 부드러운 바닥에 살짝 떨어뜨린 것 뿐이다. 그래도 화면 한 쪽에는 뾰족한 무엇엔가에 찍힌 듯 좁고 깊게 파여있고, 그 점을 중심으로 디스플레이에 긴 금이 여러 줄 생겼다. 아직 2년은 더 써야 하는데… 올초 설에 벌어진 일이다.

부모님 댁에 도착하자마자 알리익스프레스에서 디스플레이를 주문했고, 하는 김에 대략 1년 전에 한 번 교체했던 노혼의 호환 배터리를 하나 더 구입. 그러고는 한 달을 기다렸다.

배터리 교체

최소 아이폰 6S까지는 배터리 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홈버튼의 지문인식 관련 부품도 디스플레이에 딱 붙어 있고, 공식적으로 방수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테두리의 접착을 뜯어내는 것도 크게 부담이 없다. 다만 이번에는 화면이 깨져 있으니 뚜껑을 뜯으면서 깨진부분이 바스러지지 않게 주의하기만 하면 된다.

배터리를 교체하는 장면은 유투브를 참고했다. 처음 한 번은 그냥 자세히 살펴보고, 그 다음엔 장면장면 일시정지 해가면서 따라하면 어렵지 않다.

주의할 점은,

  1. 확 제끼다가 화면이 깨지지 않도록 할 것
  2. 화면을 처음에 90도까지만 들어야한다. 디스플레이와 본체 보드의 커넥터가 찢어지지 않도록 주의
  3. 배터리를 고정시킨 접착 테이프를 끊어지지 않게 뜯을 것: 이건 테이프가 꼬이지 않게 잘 펴서 아주 천천히 잡아당기면 그런대로 잘 된다.
  4. 접착테이프를 뜯어내지 못했을 때, 무리해서 뜯으려다 배터리가 꺾이면 불이 붙기도 한다고 들었다.

조립은 역순으로 천천히 하면 된다.

새로운 디스플레이

배터리 교체가 끝나면 이제 화면을 갈아야 합니다. 화면은 아마 풀세트를 사서 통째로 갈았다면 쉬웠을지 모르겠는데, 내가 구입한 것은 20달러 미만의 제품들로 지문인식 센서는 물론이고, 전면카메라 부속도 붙어 있지 않아서 기존 디스플레이에서 곱게 떼서 붙여줘야한다.

이 역시 유투브에 올라온 동영상을 참고해서 작업했다. 먼저 한 번 필요한 부분을 보고, 화면을 켜서 작업 중인 부분을 돌려보면서 천천히 진행했다.

홈버튼

가장 걱정했던 것은 지문인식센서. 혹시나 선을 끊어먹거나 고장이라도 나면 다른 부품으로 교체할 수도 없고, 터치ID를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생각보다는 쉽게 분리가 되었다. 접착제가 붙어 있어서 드라이기로 조금 데워서 힘을 주어 살짝 뜯어냈고, 다른 부분은 나사만 잘 풀면 괜찮았다. 새 제품에 다시 부착할 때는 접착은 신경 쓰지 않고, 나사만 적당히 조여주면 OK.

처음 나사를 너무 꽉 채웠더니 홈버튼 눌리는 느낌이 없어져서, 다시 살짝 풀어줬더니 적당히 딸칵하는 느낌이 생겼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홈버튼을 얹고 나사를 채울 때 순서에 맞게 포개놓지 않으면 마지막에 화면이 눌린다는 것이다.

전면부 카메라

개인적으로는 디스플레이 교체하는 과정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게 느껴졌다. 접착된 부분을 처음 때어낼 때도 연결선이 상당히 가늘어서 끊어먹을까봐 걱정되었고, 커넥터가 몇 개 모여있다보니 적당한 순서로 포개는 것과 덮개를 잘 덮는 것까지 번거로운 편이었다. 접착부를 뜯고 나서 다시 조립할 때도 새 제품의 스티커를 살짝 벗겨서 다시 접착부에 붙여줘야했고, 정작 카메라 렌즈 부는 마지막 덮개를 덮고 나사를 다 채울 때까지 특별히 고정해둘 방법이 없어서 손이 많이 간다.

화면 뒷판

화면 바로 뒤의 철판은 쉽다. 테두리를 따라 7개 정도의 나사를 잘 풀어내서 새제품에 다시 잘 덮고 조여주면 끝. 다만 터치ID를 조립할 때 뒷판을 풀고, 터치ID를 조립하고, 그 다음에 다시 뒷판을 조립해 줘야한다. 혹시나 나처럼 터치ID 나사를 하나 깜박했다면, 괜히 이리저리 시도하다가 시간만 버리지 말고 뒷판부터 바로 뜯어내자.

다시 한 번

새로운 디스플레이를 다 조립하고 났더니 불량이었다. 화면은 오히려 예전 제품 윗부분 구석에 빛샘이 있었는데, 그것도 해결되었고 화면이 깨끗하게 표시된다. 그런데 처음 암호를 누르는 화면에서 4, 5, 6 바로 아랫부분부터 독이 있을 부분 바로 위 정도까지가 터치가 먹통이다. 가로화면 모드까지 동원해서 시도해 본바 딱 그 영역의 직사각형 부분이 터치가 되지 않는 불량.

일단 바로 환불 신청. 혹시 사설에서 고쳐볼까 하고 다음날 새 디스플레이를 달고 출근을 했는데, 사설은 터무니 없는 가격(19만원이었나)을 부르길래 바로 마음을 접었다. 하루 고생하고 나서 집에 와서는 바로 불량품을 분리하고, 깨진 화면을 다시 붙여 놓았다. 그러고는 새 제품을 비슷한 가격인 19천원 정도에 주문하고 다시 한 달을 기다렸다.

그리고 위의 화면 교체 작업을 한 번 더 했는데, 이번에는 접착제도 이미 모두 떨어져있었고, 한 번 해봐서 손에 익은지라 훨씬 쉬웠다. 그러고 다시 말끔해진 전화기를 쓰기 시작했다. 터치가 자주 끊어지긴했다. 신경쓰이지만 너무 짜증나서 전화기를 집어던지고 싶지는 않은 정도. 아내는 자기 보기에 화질이 더 안 좋아진 것 같다고 했다. 자글자글. 그래도 어쩌겠나, 써야지.

아름답게, 마무리

그렇게 다 교체를 하고나서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아내가 전화기를 새 것으로 바꾸자고 했다. 원래는 1년 정도는 더 쓰려고 했는데, 특히 새로운 아이폰의 인물사진 모드가 탐나서 넘어가기로 한 듯. 마침 국내 통신사에서 보조금도 제법 나오길래 아내가 먼저 바꿨다. 그리고 다음 주 건강검진이 있던 날 오후에 나도 새로운 전화기로 바꿨다.

홈바도 나름 편하고, 페이스ID도 나쁘지 않다. 인물사진 모드는 상당히 유용해서 만족스럽게 사용 중이다. 며칠 전에는 구입하고 한 달이 다 지나기 전에 JCB 카드를 발급받아서 아내와 나의 새 아이폰에 애플케어플러스를 가입해 두기도 했다.

심각한 수준의 외과수술을 버텨내고 기사회생한 내 아이폰6S Plus는 먼저 배를 가득 채운 다음, 잠든 채로 자신의 쓸모가 발견되길 기다리고 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Grand Budapest Hotel

꽤 오래전에 넷플릭스에서 찜해두고 있다가 어제 저녁에서야 보기 시작했다. 근래 주말 집에 혼자 있는 시간에는 부수고 죽이는 영화 아니면 좀비물 위주로 많이 봤는데, 오랜만에 좀 잔잔한 힐링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 영화를 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시놉시스를 읽자마자 내 기대와는 조금 다른 영화일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힐링 영화일 것으로 생각하고 이 영화를 찜해뒀었는데, 영화의 설명은 범죄/살인/코미디 같은 단어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냥 보지 말까 하다가 스냅샷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어서 보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한 시간 반쯤 시간을 들여서 한 번 봐도 될 법한 영화다.

영화는 어느 나이든 작가의 회상으로 시작한다. 이 존경받는 소설가는 소설이란 작가가 완전히 새롭게 창작해 낸 것은 아니며, 그저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주의깊게 들은 것으로, 그 이야기를 잘 보존해서 전달하는 것이라는 거다. 이 작가가 한 때는 최고급이었으나, 이제는 낡고 퇴락한 호텔에 휴가를 갔다가, 호텔의 주인과 저녁을 먹으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액자식의 구성이다. 작가가 들은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는데, 먼저 영화의 조연이 작가에게 자신의 경험을 풀어내는 형식이다. 나이 지긋한 이 노인은 자신의 이야기에서는 고향을 멀리 떠나와서 호텔의 Lobby boy로 겨우 취업한 풋내나는 소년이다. 그래도 제법 빠릿빠릿해서 호텔의 지배인이 흡족해했고, 그래서 그와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영화의 줄거리는 접어두고, 영화에는 시놉시스처럼 살인과 나름의 모험이 나오지만, 전체적인 영화의 분위기에 맞게 다루어져 있다. 모험은 생각보다는 쉽게 풀려나가고, 악당의 살인은 직전까지는 분위기를 무섭게 깔지만, 실제로 일어날 때는 가볍고 우스꽝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영화 이야기자체는 특별할 것은 없지만, 영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배경과 서구의 고풍스런 저택을 보는 맛이 있다. OST도 제법 유명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화면은 약간 투박한 느낌인데도 쉽사리 눈을 때기 어렵게 아기자기하다.

아마 영화에서 의미와 오밀조밀하게 잘 짜여진 이야기를 바란다면 썩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겠으나, 나처럼 영화에서 시각적인 재미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제법 재미있게 볼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와 비슷한 인상을 받은 영화이다. (시대와 공간적 배경, 이야기 전개가 전혀 다름에도)

Logitech K780과 MX Ergo

구매동기와 선택 기준

회사에서는 항상 노트북을 지급받아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자주 출장을 가거나 자리를 옮겨야해서 별도의 키보드나 마우스 없이, 노트북 한 대로 가능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아무리 작아도 짐 하나 더 생기는 것이 꽤 귀찮거든요. 그러다가 최근에는 계속 한 자리에서만 일하다보니, 모니터가 보기 편하게 눈 높이 살짝 아래로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높이를 맞추자면 노트북 스탠드가 필요했고, 그만큼 노트북이 제 몸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으니까, 자연스레 키보드와 마우스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친구가 선물해준 저렴한 무선 키보드/마우스 세트를 사용했는데요. 쓰다보니 욕심이 생겨서 쓸만한 물건을 찾아봤습니다.

키보드를 찾을 때, 물건을 고르는 기준은 단순했습니다.

  1. 가능하면 아이패드와도 연결될 것
  2. 숫자 키패드가 있을 것

두 번 째 기준은 쉬웠는데, 첫 기준을 만족하는 키보드가 다양하지는 않았습니다. 보통 unifying reciever를 통하는 방식이다보니 아이패드와 직접 블루투스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요. 결국 이전 제품도 나름 만족스럽게 사용했던 로지텍 키보드 중에서 찾아봤고, K810이나 800은 평은 좋지만 숫자 키패드가 없어서 K780을 구입했습니다.

마우스는 당장 급하지는 않아서 기존에 쓰던 것을 계속 사용했는데, 회사에서 자리가 좀 좁다보니 마우스 옮기는 게 불편해서 아예 트랙볼 쪽으로 관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로지텍에서도 트랙볼이 나오는 것을 보고, 마침 아마존에서 할인도 하는데다, 기왕 사는 거 한 브랜드로 통일하자 싶어서 MX Ergo를 구입했습니다.

K780

기계식 키보드를 사용해보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로지텍 키보드의 얕은 키감에 만족하는 편입니다. 이 키보드는 제가 평소 사용하는 아이패드용 Type+ 보다오히려 깊이감이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타자를 치기에 불편함이 없고, 손가락도 쉽게 피로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키감에 대한 얘기는 간단히 끝내고 기능과 연결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연결성

K780은 unifying receiver와 블루투스를 통한 연결을 모두 지원합니다. 그래서 처음 마우스를 별도로 사용할 때, 마우스는 동글을 usb에 꽂고, 키보드는 컴퓨터와 블루투스로 연결하여 사용하였는데요. Windows 10에서 블루투스로도 전반적으로 잘 붙어 있기는 했지만, 한 번 씩 연결이 끊어졌는지 키보드가 전혀 반응이 없을 때가 있는데, 그러면 대부분은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 졌지만, 가끔은 컴퓨터를 껐다 켜서도 연결이 잘 되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사진 상에 보이다시피, F1\~F3까지의 펑션키는 흰색으로 표시되어 있고, 차례대로 1에서 3까지의 번호가 매겨져 있습니다. 이는 키보드와 연결되는 기기를 전환할 수 있는 버튼인데, 저는 1번은 컴퓨터, 2번은 아이패드, 3번은 아이폰으로 연결해두고 있습니다. 여러 기기와 연결되는 키보드를 샀을 때 중요한 것은, 기기간 전환했을 때, 얼마나 빨리 키보드가 입력 준비상태로 가느냐일텐데요. 제가 쓰기에는 준수한 빠르기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경험 상, 대부분 기기 전환하고 1초 정도면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컴퓨터와 블루투스로 연결하고 사용하다가, 마우스까지 MX Ergo로 바꾼 다음에는 하나의 동글을 컴퓨터에 끼우고, 마우스와 키보드를 동시에 연결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동글로 두 기기가 동시에 연결되니, 간편한 것도 좋지만, 요새 노트북에서는 부족한 usb 슬롯을 하나 아낄 수 있는 것도 좋네요.

블루투스 상태에서는 키보드가 한 번 씩 먹통이 되는 듯한 현상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동글을 통해서 연결하고 나서는 그런 현상은 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회사 노트북이라 이런저런 보안프로그램이 깔려있기도 하고, 블루투스가 동글로 연결하는 것보다는 좀더 불안정해서 그런 것 같네요.

기능

키보드에서 기능을 따져봐야 타이핑 잘 되는 것 밖에 무엇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타이핑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되고 있어서 만족하고 있어요. 처음 샀을 때부터 한참 동안 키보드를 한참 건드리지 않다가 키를 입력하면 첫 번 째 입력은 무시하는 버그가 있었는데, 시월말 정도에 해당 문제를 해결하는 펌웨어가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바로 며칠 전에 업데이트를 해보았는데, 문제없이 잘 되고 있습니다.

로지텍 키보드에서 기능이라고 한다면, 전용 프로그램을 통한 키매핑이 핵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프로그램은 전체적으로 잘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1\~3에 각각 어떤 기기가 할당되어 있는지 바로 확인이 가능하고, 기능키 부분에 어떤 기능을 짝지을지도 설정할 수가 있어요. K780의 기능키(F1\~F12)에는 홈, 볼륨 조절, 검색, 속성, 재생/정지 같은 기능이 매칭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버튼을 눌렀을 때, F1~F12까지의 기능키가 아니라 이러한 특수 기능이 실행되도록 되어 있어요.

F1\~F12를 누르려면 컨트롤 옆에 있는 fn 키를 누른채로 기능키를 눌러줘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불편합니다. 특히 엑셀 다룰 때 많이 불편해요. 셀 값을 수정하려고 F2를 누르면 어느새 아이패드와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직전에 적용했던 서식을 다른 셀에도 적용하려고 F4를 누르면 시작버튼(윈도우 10 기준)이 눌려버립니다. 새로고침을 하려다가도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눌렀을 때의 팝업 메뉴가 떠버리기 십상이어서 신경을 써줘야하는데, 이게 은근히 번거롭지요.

전용 프로그램인 Options를 사용하면, 기능키를 눌렀을 때의 기본값을 F1\~F12로 변환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회사는 Options 자체가 설치가 되지 않아서 사용을 못하고 있지만, 처음 설치했을 때는 바로 이것부터 설정을 바꿔 주었네요. 그 외에 검색버튼을 누르면 계산기가 실행되도록 해두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렇게 설정해 뒀음에도 불구하고 F2를 누르면 자꾸 아이패드로 페어링이 된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다시 제가 설정해둔대로 돌아오기도 하지만, 원래의 세팅으로 바껴버리는 경우가 자주 있네요.

그 외

키보드에는 AAA 타입의 건전지 두 개가 들어갑니다. 처음 구입하면서 넣은 것으로 현재 몇 달 간 사용 중인데, 쌩쌩하게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구입했던 로지텍 키보드나, 지금 사용하고 있는 아이패드 용 키보드를 생각해도 배터리는 꽤 오래 갈 것으로 생각이 드네요. 아마 1년 정도는 충분히 유지되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키감은 얕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키보드를 그리 여러 종류를 써 보는 편은 아니지만, 쓰고 있는 노트북과 비슷한 정도로만 느껴지네요. 그만큼 키보드 높이가 그렇게 높은 편도 아니고, 무게도 아주 무겁지는 않습니다. 그렇다해도 텐키가 옆에 붙어 있으니 면적이 제법 넓어져서 휴대하며 쓰기 좋은 편은 아니에요.

그리고 키보드 앞의 하얀 부분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거치해두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가끔 거기에 아이패드나 아이폰을 올려두고 사용할 때가 있는데, 키보드 자체 무게가 있다보니 거치도 안정적이고, 각도도 적당한 편입니다.

MX Ergo

연결

MX Ergo는 최대 2대의 기기에 페어링을 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역시 블루투스와 유니파잉 동글을 이용해서 연결이 가능한데, 이번에는 그냥 바로 동글을 이용해서 연결했습니다. 그리고, 기기를 두 대에 연결할 일은 없다보니 전환 속도를 따로 테스트해보지는 못했습니다.

컴퓨터와 연결했을 때,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키보드보다도 더 안정적으로 컴퓨터와 붙어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연결에 걸리는 시간도 길지 않았고, 특별히 중간에 작동이 잘 안된다거나 하는 느낌도 없었습니다. 트랙볼의 휠버튼을 누르려다가 한 번 씩 페어링 버튼을 누를 때가 있는데, 그렇게 페어링 모드가 2번으로 넘어가더라도 다시 1번으로 돌려주면 바로 작동하는 걸로 봐서 전환에 걸리는 시간도 매우 짧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기능

의외로 크기도 더 작고, 버튼 수도 적은 MX Ergo가 키보드보다 설정할 수 있는 기능이 더 많았습니다.


일단 각 버튼을 나열해보면 왼쪽 면에 프리시전 버튼이 있고, 위 쪽으로는 좌.우 클릭버튼, 앞으로/뒤로 가기, 휠, 그리고 휠 바로 아래에 연결 전환 버튼이 있습니다. 버튼의 기능은 몇몇 팔 수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전혀 다른 기능으로 매핑될 수 있습니다.

  1. 프리시전 버튼은 포인터를 다 정밀하게 움직여야할 필요가 있을 때 누릅니다. 활성화되면 바로 옆의 지시등에 하얀 불빛이 들어오고, 트랙볼을 같은 거리만큼 굴려도 포인터가 움직이는 거리는 확 줄어듭니다. 체감 상으로는 절반 정도 되는 것 같네요. 그만큼 포인터를 미세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2. 좌우 클릭은 우리가 기대하는 그대로의 기능이죠.
  3. 앞으로/뒤로가기 버튼도 기대했던대로 움직입니다. 브라우저나 파일 탐색기에서 직전 화면으로 돌아가거나, 앞으로 갈 수 있습니다.
  4. 을 위, 아래로 굴리면 화면이 스크롤됩니다. 뻔하죠. 그리고 휠을 누르면 클릭이 되는데, 일반적인 마우스의 중간 버튼 역할을 합니다. 이것도 흔하고. 제가 신기했던 하나는 휠을 왼쪽, 오른쪽으로 기울이면 딸칵하고 버튼 눌리는 느낌이 들면서 좌우 스크롤이 된다는 점입니다. 엑셀로 재무 모델을 만들 때 기간이 길다보니 옆으로 많이 움직여야 했는데, 이 때 참 편했어요.
  5. MX Ergo는 두 대의 기기에 연결할 수 있는데, K780과 달리 기기별 하나의 버튼이 있는 것이 아니고, 연결 전환버튼이 하나 있습니다. 1번에 연결되어 있으면 숫자 1이 있는 곳에 불이 들어오고, 이 버튼을 한 번 누르면 2로 전환되지요. 연결 대기 상태에서는 숫자 아래 하얀 지시등이 빠르게 깜박거리고, 안정적으로 연결되면 불이 지긋이 켜져 있다가 사용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꺼집니다.

이 중에서 연결 전환 버튼과 프리시전버튼을 제외한 다른 모든 버튼은 Options 프로그램을 통해서 다른 버튼으로 매핑될 수 있습니다. 재밌었던 것은 단지 다른 버튼의 기능 하나만 할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몇 개 버튼의 조합에도 기능을 할당할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요. 단지 마우스 버튼 끼리만 조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로지텍 키보드를 함께 쓰고 있다면, 키보드와 조합해서도 기능을 할당해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꽤나 다양한 조합이 가능했습니다. 제가 그 정도 수준까지는 쓸 일이 없어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드리긴 어렵네요.

사용하면서

일단 트랙볼이라는 것을 처음 사용하다보니 처음에는 좀 어색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적응은 금방되네요. 다만, 제가 적응을 다 못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마우스처럼 정밀하게포인터를 움직이긴 어려웠습니다. 프리시전 버튼이 있어서 이 기능을 켜면 조금더 섬세하게 움직일 수 있지만, 왠지 아주 마지막에 조금씩 손이 떨리는 듯 하네요. 그래도 파워포인트 작성하는 정도에서 아주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고, 엑셀을 주로 사용하던 입장에서는 의식되지 않을 수준이었습니다. 그래도 굳이 따져보자면, 마우스가 가장 세밀하게 움직일 수 있었고, 그 다음에 트랙패드와 트랙볼이 비슷한 수준이라고 느껴지는데, 적응되면 트랙볼이 더 쾐찮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좌우 스크롤 기능은 아마 트랙볼이 아닌 다른 로지텍 마우스에서도 지원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엑셀에서 특히 요긴했지만, 다른 때에도 종종 사용하게 되는 편리한 기능입니다. 직장을 옮기고 나서 회사 컴퓨터에 Options 설치가 막힌 상태라 이 기능도 동작을 하지 않고 있는데, 그러니 뭐든 옆으로 스크롤해서 봐야하는 문서류는 새삼스럽게 보기가 불편해 졌어요.

트랙볼은 움직이지 않고 써야하니 좀 묵직한게 좋겠죠. 이 녀석도 부피도 제법되고 무게도 좀 나가는 편이긴 한데, 그래도 마우스 쓰던 버릇이 남아서 그런지 쓰다보면 은근히 움직이는 편입니다. 키보드 숫자 패드에서 멀리 떨어뜨려 두는데도, 쓰다보면 가까이 와있어요. 그리고, 각도를 조정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수직에 좀더 가깝게 하는 편이 손목에는 편합디다. 각도는 두 단계로만 조정할 수 있습니다.

손목을 지키기 위해 트랙볼을 쓴다!라는 생각이 좀 있었는데, 쓰다보면 손목을 얻고 엄지손가락 관절을 버리는 건 아니겠지?하는 걱정이 가끔 들긴 합니다.

볼을 손가락으로 휙휙 굴려주는 기분이 나름 재미있고 좋아요. 마우스로는 이런식으로 안되니까요.

그나저나

전 직장에서는 특별히 인터넷이 막혀있지 않은데, 지금 직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업무용으로 허가받은 곳을 제외한 모든 사이트가 막혀 있습니다. 그래서 Options를 설치할 수도 없고, 드라이버도 설치가 안되요. 그러다보니 마우스와 키보드를 따로 설정할 수도 없고 그냥 기본 상태로 써야합니다. 이게 조금 애매한 것이, 제어판 – 마우스에서 휠 한 번에 스크롤할 행수를 따로 설정해줘도 반영이 안되고, 트랙볼의 좌우스크롤 버튼도 정작 피요한 엑셀 같은 것에선 전혀 먹히지 않네요.

연결하는 경우에도, 유니파잉 리시버에 새로운 연결은 인식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상황입니다.

\1. 처음에 회사 컴퓨터에 리시버를 끼웠을 때는 연결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건 별문제 없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요. 2. 키보드 펌웨어가 업데이트된 것을 알고 키보드를 집에 가져와서 기존에 사용한적 없는 리시버와 개인랩탑을 연결해서 펌웨어를 업데이트 했습니다. 3. 회사에 다시 오니 회사 컴에 꽂혀있는 리시버에는 키보드가 인식되지 않고, 새로운 리시버에는 트랙볼이 연결되지 않아요. 4. 상황을 유추해 봤을 때, 키보드는 새로운 리시버로 연결 전환되고, 트랙볼은 예전 리시버에 그대로 남아 있는데, 5. 이게 회사 컴퓨터에서는 새롭게 인식되지 않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6. 결국 트랙볼과 새로운 리시버를 집에 들고와서 개인 랩탑에서 연결을 했고, 7. 결과적으로 회사에 새로운 리시버를 꽂아보니, 키보드, 트랙볼이 모두 연결 전환이 되어서 그 때부터는 다시 인식이 잘 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아무래도 회사 컴퓨터의 특수한 상황 같기는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놀란 것은 키보드만 펌웨어 업데이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유니파잉 리시버도 업데이트가 있었다는 점. 그냥 usb 드라이버 정도로 생각했는데, 뭔가 기능이 있구나 한 점이 신기했네요.

결론

  • K780은 충분히 제값을 하는 키보드라고 생각이 듭니다. 마침 키보드를 하나 사야하는데, 회사에 아이패드나 태블릿을 들고가서 자주 같이 쓴다면, 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입니다.
  • 마우스 대신 트랙볼을 한 번 써보고 싶다면, 최소한 사서 돈값 못한다고 후회는 하지 않을 제품이 MX Ergo라고 생각해요. 만약에 키보드가 로지텍 제품이라면, 다른 유명한 트랙볼 대신에 로지텍의 트랙볼을 사는 것에 몇 가지 이유를 덧붙여 줄 것입니다.

멜트다운(Meltdown)과 스펙터(Spectre)

지난 해 큰 이슈가 되었고,아직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멜트다운과 스펙터 문제에 대해서 잘 설명된 글이 있어서 간략히 소개해 드립니다.

이 문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컴퓨터의 기본적인 성격에 대해서는 이해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멍청하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말도 안되게 빠르다는 점입니다.

효율

컴퓨터가 멍청하긴 하지만 엄청나게 빠르죠. 그렇기 때문에 혼자서 컴퓨터 한 대를 통째로 쓴다면, 한정된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쓰게되는 문제점이 생깁니다. 내 문제에 대한 답을 엄청 빠르게 가져다 주니까, CPU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동안 할일이 없는거죠.

저는 아이패드를 주로 쓰다보니까 사실 제 노트북도 한 달 중에 정작 쓰는 시간은 몇 시간 안됩니다. 대부분 그냥 잠들어 있어요. 그러니 저와 사용 패턴이 다른 몇 사람이 노트북을 공유한다고 하면, 서로서로 거의 불편할 일 없이 노트북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 겁니다.


(출처: stratechery.com)

만약 아주 거대한 규모로 컴퓨터 자원을 마련해서 같이 쓰면 어떨까요? 수천명, 아니 수천만명이 거대한 컴퓨터를 공유해서 쓰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컴퓨터를 여러 대 따로 돌리는 것에 비해서, 인프라를 더 효율적으로 배치할 수도 있고, 수많은 사람이 자원을 공유하는 것이니 만큼 그만큼 자원이 노는 틈도 더 없어질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가 비용을 아낄 수 있을지 모르는데도, 내 컴퓨터를 잘 모르는 사람과 나눠쓰지 않으려는 뻔한 이유가 있죠. 내 개인적인 — 그리고 중요한 — 정보에 다른 사람이 접근하는 것이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AWS같은 대형 클라우드 서비스는 가상 머신을 통해서 내가 공유된 컴퓨터를 마치 나만의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해줍니다. 나는 내가 기록한 정보에만 접근하고, 다른 어떤 사람도 내 정보에 접근할 수 없도록 막아주는 것이죠.

만약, 이런 약속이 지켜질 수 없게된다면 그건 정말 큰 문제일 겁니다. 그리고 멜트다운과 스펙터로 발생하는 결과이자 두 취약점의 공통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권한이 없는 사용자가 다른 사람의 비밀 키나 비밀번호나 다른 사람이 보유하는 어떤 정보이든 접근할 수 없어야하는 정보에 접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중의 사용자가 가상머신을 통해 컴퓨팅 자원을 공유하는 구조는 아주 근본적인 가정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어느 가상머신 이용자가 다른 사람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죠. 이 가정은 확장하면 가상머신 소프트웨어의 신뢰성에 바탕을 두고 있고, 가상머신 소프트웨어는 기반 운영체제에, 기반운용체제는 다시 서버를 돌리는 처리장치의 신뢰성에 기대고 있습니다.

잠시 커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 하겠는데요. 저도 전문가가 아니기에 커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는 않은데, 설명에 따르면 커널은 일반 이용자는 접근 할 수 없어야하는 운영체계의 핵심 부분 중 하나이고, 자체적으로 메모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메모리에는 코어 시스템의 데이터뿐 아니라 모든 사용자의 데이터가 다 저장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 커널에 대해서도 시스템은 가상화에 의존하고 있는데요. 커널 메모리도 기본적으로 실제의 저장장치로 되어 있어서 사용자가 자기네 프로그램을 위해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커널 메모리의 어느 부분을 누가 사용하고 있는지, 추적하는 것이 CPU의 역할 중 하나이고, 두 개의 취약점은 바로 이 단계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시 각각의 취약점을 좀더 수월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각 메모리별 처리 속도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계산의 속도

글쓴이는 컴퓨터를 크게 프로세서와 메모리, 저장장치(permanent storage)로 나누고 있습니다. 이와 다른 기준을 가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기준이 틀렸다고 말할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프로세서부터 저장장치까지를 조금 더 늘려 보면 아래와 같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처: stratechery.com)

  • CPU에 달린 register의 속도가 가장 빠르고 크기도 가장 작습니다. (예를 들어 2GHz 프로세서라고 한다면 초당 20억번 계산을 한다는 거죠.)
  • 그 다음에 여러 종류의 캐시가 있습니다. 보통 L1, L2, L3 정도로 나뉘는데, 당연히 레지스터보다는 느리고 좀더 크죠. 숫자가 올라갈 수록 더 크고, 더 느려 집니다. 캐시는 보통 프로세서가 연산을 하기 위해서 즉각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저장해 두고 있다가 레지스터에 넘겨주는 역할을 합니다.
  • 그다음에는 보통 RAM이라고 말하는 메모리가 있죠. 이건 더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다가 캐시에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당연히 더 느리죠. 왜 필요한가하면 캐시에 비해서 용량이 훨씬 크고, 무척 저렴해 지거든요.
  • 마지막으로 저장장치를 들 수 있습니다. 하드드라이브 같은 것 말이죠. SSD가 나오면서 많이 빨라지긴 했지만 그래봐야 위의 메모리에 비하면 느립니다.
  • 네트워크 저장장치는 전통적인 영역으로 보긴 어렵지만 아무튼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접근하기 더 느리지만, 더 싸고, 용량이 크죠.

느리다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CPU가 한 사이클 도는데 0.3나노초가 걸리는 반면에 메모리는 120나노초, SSD는 50에서 150마이크로 초가 걸리는데요. CPU 시간을 1초로 본다면 메모리가 6분이 걸리고 SSD는 이틀에서 엿새 정도 걸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엄청난 시간이죠.

계산은 찰나, 아는데는 반백년

글쓴이가 소개한 비유를 저도 그대로 가져와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올림피아(미국 워싱턴 주의 도시)에서 사는데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여름인턴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짐을 싸서 가야하는데, 시애틀의 여름 날씨는 정말 얄궂어서 춥고 비가 쏟아질 때도 있고, 또 어떤 때는 아주 덥고 볕이 내리쬘 수도 있어요. 그날 날씨가 어떨지는 그날 아침이 되어봐야 알 수 있을 때가 대부분이죠.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요. 굳이 똑똑할 필요도 없이 양쪽 날씨에 어울리는 옷을 모두 준비해서 가게 될 겁니다. 옷 가방에서 옷을 꺼내는 편이, 날씨 바뀔 때마다 집에 와서 옷을 바꿔가는 것보다 훨씬 쉽고 빠르니까요.

여기서부터 이러한 은유가 현실과 달라지게 됩니다. 실제로 현대의 프로세서는 단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가져올뿐 아니라,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리 계산을 해버립니다. 이것을 투기적 실행 (Speculative Execution)이라 부르고, 이 두 취약점의 핵심 사항이 됩니다.

이 은유를 알고리즘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날씨를 확인한다(센서, 데이터 확인 등의 여러 하위 절차를 실행)
  • 만약 맑으면,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는다.
  • 그렇지 않으면, 청바지와 스웨트티를 입는다.

다시 한 번 기억해 둘 사항은, 컴퓨터는 멍청하지만 말도 안되게 빠르다는 겁니다.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는다” 또는 “청바지와 스웨트티를 입는다”를 실행하는 것은 실재로 몇 나노초 밖에 걸리지 않아요. 실제로 시간이 걸리는 것은 관찰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프로세서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날씨를 알기도 전에 미리 당신에게 옷을 입혀 두는 것입니다. 이 때 대개는 과거 며칠간 날씨가 어땠는가 하는 과거 기록에 근거하겠죠. 그 말은 날씨 정보를 기다리는 동안 신발신고 악세서리도 챙겨둘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동시에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프로세서의 또 다른 측면 이지요.. 결론적으로 어떤 일을 하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결과를 예측해서 시행하는 것이고, 만약 예측이 틀렸다면 그 에 맞춰서 새로 작업하는 것입니다.

멜트다운 Meltdown

이제 아래와 같이 바뀐 알고리즘을 생각해봅시다.

  • 당신 상사의 달력을 체크해서 사무실에 있을 예정인지 확인
  • 만약 사무실에 있으면, 슬랙과 와이셔츠를 입자
  • 만약 사무실에 없으면,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자

여긴 딱 하나 문제가 있는데, 당신은 상사의 달력에 접근해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컴퓨터는 멍청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명심합시다. 프로세서는 이 사실을 묵시적으로는 알 수 없고, 실제로 접근 가능한지 확인을 해봐야만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위의 알고리즘 아래에 더 가까워집니다.

  • 상사의 달력을 체크해서 사무실에 있을 예정인지 확인
  • 이 인턴이 매니저 달력에접근 권한이 있는지 확인
  • 접근 권한이 있다면, 달력에 접근
  • 상사가 사무실에 있으면, 슬랙과 와이셔츠를 입자
  • 상사가 사무실에 없으면,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자
  • 접근 권한이 없다면, 옷 입기를 멈출 것

여전히, 컴퓨터는 여러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은 훌륭하지만, 데이터를 찾아보는 일을 서툴다는 것을 기억해 두세요. 이 케이스에서 프로세서는, 특정 조건 아래서, 그 달력을 봐도 되는지 알기도 전에 상사의 달력을 보고 무엇을 입을 지 결정하게 됩니다. 만약 나중에 달력에 접근할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프로세서는 모든 것을 되돌릴 것이지만 결국에는 아마 옷이 약간 어질러져 있을 지도 모릅니다. 이를 통해서 당신은 당신이 알아서는 안되었던 답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현실과 은유가 다르다고 말을 했고, 위 사례는 완전히 어거지이긴 하지만, 넓게 말해서 이것이 바로 멜트다운입니다. 프로세서는 그래도 되는지 안되는지 알기도 전에 선제적으로 타인의 데이터에 접근해서 불러오는데, 아닌 경우에도 캐시에 흔적을 남기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흔적을 권한없는 사용자가 획득할 수 있게 되는 거에요.

스펙터 Spectre

스펙터는 훨씬 더 기교적이지만, 성공하기는 어려워요. 여러 사용자가 같은 프로세서를 쓴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내가 여러분처럼 옷 가방을 싼다고 생각해봅시다. 이 때, 나는 그 다음에는 프로세서에게 언제나 날씨가 맑을 것으로 기대하도록 훈련 시킬 겁니다. 프로세서는 시간에 앞서 반바지와 티셔츠를 준비하겠죠. 그러면, 내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프로세서는 반바지/티셔츠를 미리 골라뒀을 것이고, 만약 실제로 비가 오면, 옷을 다시 가방에 넣을 텐데, 항상 조금씩 어질러져 있을 겁니다.

이 비유는 사실 억지를 넘어서 말도 안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는 작동하지 않거든요.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연산을 수행하면서 당신 데이터를 메인메모리에서 미리 불러오기만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프로세서가 잘못된 분기를 따라가는 동안 일시적으로 캐시에 저장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저장된 데이터는 프로세서가 에러를 수정할 때, 재빠르게 삭제되겠지만, 나는 여전히 캐시에 어떤 데이터가 저장되었었는지 알아낼 수 있다는 겁니다. 바꿔 말하자면 방금 내가 당신의 데이터를 훔쳤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해한 바를 부연하자면, 일반적으로는 여러 분기와 계산이 오가니 캐시에 저장되었던 데이터를 누가 확인할 일이 잘 없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어떠한 분기를 반복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서버에서 실행시키면, 일반적으로는 별일이 없다가도 다른 사람의 접근권한이 없는 데이터에 액세스할 때, 투기적 실행 결과로 미리 데이터를 불러 냈다가 삭제하는 과정이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메모리에서 데이터가 삭제되는 것은, 다른 데이터가 덮어 씌워지기 전까지는 이름표만 삭제된 것과 같으니까, 의도를 가진 누군가라면 짧은 순간 데이터를 추출해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설명하기에는 멜트다운이 더 쉽습니다. (애플의 프로세서도 똑같은 영향을 미친다고 인텔이 항의하고 있긴 하지만,) 이것은 기본적으로 설계상의 결함이기 때문이지요. 프로세서가 접근가능한 데이터인지를 확인하는 데 대한 책임이 있고, 그 확인이 너무 늦어서 데이터를 훔치게 되는 것은 버그일 수 밖에 업습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멜트다운은 소프트웨어적으로 수정될 수 있습니다.(기본적으로, 데이터를 사용하기 전에 접근 권한을 확인하는 절차를 하나 추가하면 됩니다.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이 패치로 성능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죠.)

스펙터는 이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프로세서는 설계 목적에 맞게 작동하거든요. 앞서 몇 번 설명했듯이, 컴퓨터는 기본적인 계산은 어처구니없을만큼 빠르지만, 그 계산을 위해 데이터를 가져오는 데는 시간이 거의 영원토록 걸립니다. 그러니까, 병목에서 기다리지 않고, 최선의 추측에 근거해서 계산을 수행하는 것은 이 근원적인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가능한 최선의 방법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당신은 계산 결과를 엄청나게 빠르게 얻게 될 것이고, 만약 추측이 잘못되었다 해도, 모든 것을 순서대로 했을 때보다 더 느리지는 않으니까요.

이것은 또한,스펙터가 모든 프로세서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현대 프로세서의 평행성과 계산 속도를이용한 속도의 향상은 매우 커서 투기적 실행(Speculative Execution)은 피할 수 없는 선택지가 됩니다. 분기예측기가 다른 사용자에 의해 조작(훈련, train)되어서 캐시의 변화가 추적될 수 있다는 것은 작년이 되어서야 발생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를 확장하면, 스펙터는 소프트웨어적으로 수정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특정 명령(implementations)은 차단될 수 있지만, 취약성은 내재되어 있지요. 새로운 프로세서가 설계되어야겠지만, 이미 사용되고 있는 수십억개의 프로세서가 뿅하고 사라질 일은 없으니,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쳐나가야 합니다.

마치며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이전에는 해결되지 않던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하지만, 기술 자체가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또 어떤 문제는 그 자체의 특성과 한계로 인해서 기술을 통해서는 좀처럼 해결할 수 없기도 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생겨나는 문제들은 점점 더 복잡해져서 문외한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가 난감해져 가고 있습니다.

저도 IT 쪽으로는 아는게 없지만, 그래도 몇몇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이해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시점에 좋은 글을 봐서 소개해 보았습니다. 어찌되었든, 지금 우리는 컴퓨터에 둘러쌓인 채로 살고 있으니까요. 바로 그 기계에서 보안, 우리 개인정보와 관련되어 전지구적인 문제가 터졌다면 한 번 관심가져 볼 법하지 않을까요.

번역과정에서 제가 단어나 IT 개념을 잘못이해해서 오역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적해주시면 바로바로 수정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