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설이다. 영화와 소설

“나는 전설이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벌써 9년 전, 2007년에 영화가 처음 개봉했을 때, 바로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일단, 좀비 영화를 좋아하기도 했고, 윌 스미스라는 배우도 어느 정도는 재미가 보장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소설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일단 영화를 먼저 보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소설을 찾아서 읽어보았는데, 소설을 찾아본 이유는 1. 원작소설이 있는 영화가 재미있으면, 왠만하면 소설도 읽어보자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2. 영화의 끝이 조금 애매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시 영화에 조금 관심을 가졌다면 누구나 알겠지만, 영화에는 두 가지 엔딩이 있다. 하나는 주인공인 윌 스미스가 죽고, 생존자가 백신을 들고 살아남은 사람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윌 스미스가 살아서 그곳에 가는 것. (내가 본 것은 윌 스미스가 죽는 쪽이다) 두 경우 모두 주인공이 인류를 위해서 매우 인상적인 — 충분히 전설적이라고 말할 법한 — 활약을 펼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이런 경우에 본인이 “나는 전설이다.”하고 확신에 차서 말하지는 않는다. 과학자가 아직 제대로 임상을 거치지도 않은 백신을 손에 쥐고 “나는 전설이다”하고 외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색하다.

그러다가 소설을 읽어보면, 소설을 끝까지 읽어보면 그 제목이 납득이 간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딱히 의사나 과학자는 아니고, 주인공을 찾아오는 마지막 생존자 따위도 없다. 사실 소설에는 마지막 남은 구인류와 과거의 인류와 대척하는 신인류가 있다. 일종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나타난 신인류는 우리가 생각하는 뱀파이어의 정의에 부합하게 낮에는 활동을 하지 못한다. 오직 밤에만 활동할 수 있고, 낮에는 가사상태에 빠지는데, 마지막 인류인 주인공은 낮에 가사상태의 좀비를 사냥하고, 밤에는 집으로 돌아와 철통같이 방어한다.

주인공을 찾아왔던 여성은, 마지막 연민을 가지고 와서 그에게 떠나라 한 것이지만 그는 거부하고, 어느날 밤 좀비들의 총공격으로 요새는 함락되고, 그는 좀비 아니 신인류의 포로가 되어 사형대에 선다. 사형대에 오르기전 연민을 가졌던 여성은 그에게 독약을 준다. 고통없이 죽을 수 있도록.

사형대에 서서 그는 자신을 애워싼 사람들을 둘러보고 그들의 두려움에 가득찬 시선을 보면서 깨닫는다. 나는 전설이다. 저 사람들에게 나는 전설로 남을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난다.

영화와 소설은 큰 이야기 흐름이 비슷한 듯 보이지만 크게 다르다. 일단 영화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영웅담을 따라간다. 인류가 멸망할 위기에 처했을 때, 인류의 구원자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과학 (혹은 이성)의 승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주인공의 생존 여부에 상관없이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그에 반해서 소설은 일종의 창세기를 그린다.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인류의 멸망이라는 비극이나, 또 다른 의미에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낸 새로운 인류의 시작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새로운 인류의 시작점에서 그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악마이다. 어쩌면 그는 마지막 남은 인류의 희망이었을지 모르지만, 새로운 시대에서는 전설 속의 마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나는 전설이다”를 계기로 그의 단편선을 사서 읽어보았다. 거창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이야기에 반해 분량은 그리 많지 않고, 이 유명한 소설의 제목을 그대로 책 제목으로 따온 두꺼운 책의 나머지 부분은 리처드 매드슨이 쓴 다른 단편 소설들로 채워져 있다. 이 외의 다른 소설들도 기묘한 매력이 있다. 한 권 사서 읽어보아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Advertise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