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으로 힘겨운 시기의 리더십

살다보면 누구나 최소한 한 번 쯤은 힘든 일을 겪게 마련이다. 그리고 한 개인이 아닌 조직의 차원에서 본다면, 조직의 구성원 중 누구하나는 거의 언제나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어떤 사고의 경우에는 조직의 여러 구성원이 같은 시련에 노출되기도 한다.

HBR에서는 이처럼 구성원들이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리더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서 Leading in Times of Trauma라는 글을 통해 다루어 보았다.

누구나 힘든 시기를 한 번쯤은 겪는다. 이는 조직도 마찬가지이다. 작은 규모에서는 조직 구성원이 상을 당하거나, 다른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경우가 일어나기도 하고, 본인이 큰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그리고 좀더 큰 규모에서는 조직 자체가 사고를 당하거나, 아주 가까이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목격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가장 극단적인 예시는 2001년에 있었던 9/11 테러라고 볼 수 있을 것이지만,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여러 크고 작은 사례가 존재한다.

여러가지 사건, 사고 후에 정신적인 고통(Trauma, 정신적 외상)을 겪고 있다면, 아마 그 사람은 분명 도무지 일에 집중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조직의 책임자가 그 사람 (혹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하는 것은 — 아직 과학적으로 상관관계가 분명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 향후 조직 구성원 전체의 생산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그것은 단지 어느정도의 대우를 받느냐이기보다 조직에 대해 가지는 소속감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리더에게 요구되는 행동은 무엇이고, 리더의 행동에 — 적절한 조치를 취하거나, 취하지 않았을 때 —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리더가 가장 중요하게 해야할 일은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함께 있어준다는 것이 반드시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감정적으로 리더가 지금 구성원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으며, 당연히 그 고통을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 큰 고통을 겪고 있음을 공감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리더는 조직의 구성원이 사고로 죽었을 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를 아는 사람을 직접 찾아가 그의 죽음을 전했으며, 상대가 상황을 받아들이기까지 곁에 있어주었다고 한다. 그러한 행동은 다른 구성원들이 자신들도 이 조직 안에서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었고, 결과적으로 사기를 진작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또 다른 회사에서는 9/11로 직원들이 숨졌을 때, 바로 카운셀러 (grief counselor)1를 초빙해서 직원들이 겪는 정신적 충격과 슬픔을 이겨낼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다. 이러한 행동이 직접적으로 사기를 틀림없이 끌어오리거나, 이런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수 있으나,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한 경우와 대조해 본다면 그 필요성에 대해서 공감해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야기의 선명한 대비로, 어느 출판사의 리더십은 9/11 테러 발생 직후 이로 인해서 업무가 마비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 출판사의 편집인은 9월 12일 아침에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아야 했다. 그 시간에 그는 자신의 8살 난 딸에게 어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는 중이었는데, 그 순간에 걸려온 전화를 통해 자신이 왜 회의에 늦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출근해서 네 시간짜리 회의에 참석해야만 했고, 가족이나 친구, 동료와 공감할 수 없는채로 정신적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했고, 결국 회사에 대한 충성심도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다.

다른 사례는 방문자가 급사해버린 설계 회사의 이야기이다. 말 그대로 이 회사의 방문자가 갑작스레 죽어버린 것인데, 직원들은 이 방문자를 다시 살려내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나, 회사 복도에서 결국 한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회사 직원들에게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리더들은 이 일을 조용히 묻어두고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나갔다. 다음에 또 같은 일이 벌어지더라도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할지 아무런 지침도 남겨두지 않은 것이다. 이 사건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몇몇은 사람을 죽게 뒀다는 생각에 깊은 죄의식을 느꼈고, 다른 많은 사람들도 커다란 무력감을 느꼈다. 기실, 이 회사의 리더는 이 일을 묻고 지나감으로써, 자신의 직원들이 인간으로서 대우 받지 못한다고 느끼게 만든 것이다.

구성원 간의 연대를 일깨우고, 고통을 겪고있는 사람 곁에 있어준다는 것이 반드시 리더십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씨앗은 어느 책임있는 사람이 시작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마치 풀뿌리처럼 동료들이 일어나서 도움을 주기도 한다. 미시간 주립대학에서는 총장이 연설을 하려는 도중에 기숙사에 불이 나서 학생들이 졸지에 숙소와 모든 짐을 잃는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이 순간 그 대학의 총장은 공식적인 절차를 넘어서 본인 명의의 수표를 쓰며 그 돈으로 학생들을 도우라고 했는데, 이는 다른 학생과 교직원들이 기숙사생들을 돕기위한 자발적인 운동의 촉매가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사고를 당한 학생과는 일면식도 없는 학생이 자발적으로 다른 40명 이상의 학생을 모아서 필기를 다시 만들어서 전달해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Foote 병원에서는 친척 세 명을 잃은 한 직원을 돕기 위해, 다른 직원들이 합심해서 병원에 새로운 절차를 만들도록 로비를 하기도 하였다. 그 절차란 지금 힘든 일을 겪고있는 직원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휴가를 기부하는 것이었다. 이는 곧 병원의 공식적인 제도로 도입되어, 직원들의 유대감을 더욱 강화하는 동기가 될 수 있었다.

힘든 시기에 있어 적절한 리더십을 보여주거나 보여주지 않는 것이 반드시 성과나 조직의 유대감으로 연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봤을 때, 그리고 우리 주변의 여러 사례를 생각해 봤을 때, 이러한 작은 행동 — 유대감의 표현, 힘든 이를 돕겠다는 제스쳐 — 가 그 구성원의 조직에 대한 애착과 유대감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힘든 시기를 더욱 잘 극복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는 결론에 자연스레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가 또한 하나의 커다란 조직이라고 봤을 때, 지금 우리나라를 둘러보아도 이 가설은 좀더 사실로 다가온다. 2014년 4월 16일에 있었던 세월호 사고와 작년 여름의 메르스 사태는 국민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물론 그 숫자를 최소화하고 되도록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하나, 사고나 재난은 언젠가 한 번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로 인해 가장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방치할 뿐만 아니라, 이기적인 목적에서 호도하기까지 한다면 그걸 지켜보는 다른 이들이 언젠가 그 사고가 자신에게 닥쳐오게 되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보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그런 재난을 반복적으로 목격하면서 국가에 대한 귀속감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1. 일종의 정신상담사. 특히 내담자가 느끼는 극도의 슬픔에 대해 조언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위키피디아 참조: https://en.m.wikipedia.org/wiki/Grief_counse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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