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 Wars”는 정말로 페미니즘에 대한 영화다. 그리고 제퍼슨. 또한 예수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Cass R. Sunstein이 지난 5월 마지막 날 Bloomberg에 기고한 글을 번역, 요약 해보았습니다. 1977년 5월 25일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 나온 스타워즈는 제목에서 말한대로 페미니즘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고, 미국 건국자 중 하나인 토마스 제퍼슨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의 어떤 변주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필자가 말하는 것은 좋은 이야기는 여러 의미로 다시금 해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무려 39년 전인 1977년 5월 25일에 스타워즈라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제목의 영화가 상영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이렇게 오랫동안 회자되는 이야기가 될 지 아무도 몰랐던 영화 한 편이 이토록 강한 생명력을 가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 가지 답변은 다른 위대한 소설이나 시와 마찬가지로 스타워즈는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라고 다그치지 않고, 여러 가지 — 심지어는 모순되는 —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음은 그렇게 이해될 수 있는 방식 중 6가지 입니다.

기독교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처녀잉태의 산물입니다. 영화 내내 아나킨의 아버지는 나오지 않지요. 마침내는 그 스스로가 대변하는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죽음으로써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을 나타냅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아나킨은 죄에 굴복했었다는 것입니다.

황제는 영생으로 아나킨을 유혹합니다. 어머니의 죽음 등으로 흔들렸던 아나킨은 거기 굴복하고 영혼을 내어주지요. 이는 파우스트에 나온 거래와도 같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 모든 아이들을 대변하는 —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스스로를 희생하여 평화를 되찾고, 자신의 영혼도 다시 찾습니다.

오이디푸스

어쩌면 스타워즈는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통해서 가장 잘 설명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아나킨은 강인한 아버지의 모습에 집착하죠. 처음에는 콰이곤이었고, 그다음은 오비완, 마침내는 황제에게 향합니다. 아들을 상징하는 아나킨은 분명 첫 번째와 세번 째 __아버지__의 죽음에 책임이 있고, 있는 힘을 다해서 두 번 째 아버지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보다 상당히 연상인 파드메와 사랑에 빠집니다. 여기서 파드메는 어머니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너 정말 재밌는 꼬마구나.” 처음 만났을 때 한 말이에요. 그가 다 자라고 나서는 “애니, 넌 언제까지나 내가 타투인에서 만난 그 꼬마일거야.”라고 말하죠. 엄마들이 그렇게 말하지 않나요? 그러고는 같이 자요…

아나킨의 어둠의 편으로의 전향은 진짜 어머니의 죽음 다음에 이루어 집니다. 어떤 면에서 아나킨은 어머니를 사랑하고 있었어요.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스타워즈는 끔찍하고 당황스런 영화인가, 아니면 실제로 멋지고 영감을 주는 영화일까요. 어쨋든 누구도 “깨어난 포스”가 성 평등에 대해 크게 환기시켰다는 것을 의심하진 않을 겁니다. 레이가 명백한 영웅 — 새로운 루크! — 이고, 어둠의 편을 혼내주기도 하니까요.

반면에, 오리지널 3부작과 프리퀄들은 단순히 남자, 여자 모두에 대한 남자의 환상을 충족할 뿐입니다. 터프가이? 그냥 남자들일 뿐이죠. 만약 당신이 포스를 느낄 수 있게 되면, 더 강해지고, 그걸로 사람들 목을 조르고, 쏘고, 죽일 수 있게 됩니다. 마음에 든다면 광선검도 써서요.

그래도 다른 관점도 존재합니다. 레아는 반란군의 수장이고, 훌륭한 투사인데다, 그는 자신이 무얼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용감하고 거칠고, 총도 잘 다루지요. 반면에 남자들이란..

레아가 확실히 야한 옷을 입긴합니다. 그리고 자바 더 헛의 노예가 되죠. 하지만 자신을 묶고 있던 쇠사슬로 자신의 포획자를 목졸라 죽여 버리죠.

토마스 제퍼슨: 제다이 기사

이 시리즈는 심오한 정치적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공화당이 어떻게 제국이 되었으며, 이에 대한 반란자들의 필요, 내지는 최소한 잠재적인 반란자들을 유지할 필요를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도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는 정치적 자유가 스타워즈의 가장 중심적인 메시지입니다.

이야기는 권위주의적인 제국과 공화정을 복원하려는 반란군 사이의 분쟁을 그리고 있습니다. 제국은 나찌 시절의 독일과 크게 다를 바가 없고, 반란군의 목표는 은하계에 평화와 정의를 되돌려 놓는 것입니다. 루크 스카이워커는 처음엔 정치적으로 행동하길 꺼립니다. 제국을 싫어하지만 삼촌 내외와 농장에 살고 싶어 하죠. (결국 제국이 그들을 살해하면서 루크가 움직이게 됩니다.) “깨어난 포스”에서도 퍼스트 오더와 저항군 사이의 분쟁이라는 기본적인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여기에는 토마스 제퍼슨에 대한 단순한 반향 이상이 있습니다. 그는 “혼란이란 좋은 것을 부산물이며, 정부의 퇴행을 막아주고, 공공의 사건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증진시킨다. 약간의 반란자들이란 좋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세계에서 실절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고 했습니다.

기술

어쩌면 이야기는 기술의 비인간화에 대해 주의를 촉구하는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희망”은 드로이드와 함께 시작합니다. 어떤 면에서 이들이 이야기를 서술해 주고 있고, 인간적인 면모도 가지고 있습니다. 매력의 일부죠. BB-8은 “깨어난 포스”에서 “새로운 희망”에서 R2-D2가 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귀여운 애완동물 같기도하고, 말 잘듣는 동생 같기도 하죠. 하지만 기계를 통한 비인간화가 시리즈를 통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다스 베이더가 무서운 이유는 일부는 사람이고, 일부는 기계이기 때문입니다. “제다이의 귀환”에서 오비완이 루크에게 말했습니다. “네 아버지가 그 불구덩이에서 나올 때, 어떤 영속적인 변화가 그 안에서 일어났다. 그는 아나킨의 흔적은 전혀 남지않은 다스 베이터야. 돌이킬 수 없는 어둠의 편. 오직 그 자신의 검은 의지와 기계에 의해서만 살아있을 수 있지.” 이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어떤 상징이기도 합니다. 어둠의 편으로 떨어지면서, 그는 많은 인간성을 잃어버렸습니다. 기계의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를 향한 선지적인 경고일 수도 있습니다. (방금 이메일 확인 했죠?)

어둠의 편과 악마의 동료

크고 당당하게 말합시다. 다스 베이더가 주인공이라고. 그가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이고, 비교될만한 다른 인물이 없어요.

위대한 윌리엄 블레이크는, 영어로 쓰인 가장 종교적인 글 중 하나인 “실낙원”을 쓰면서, “밀턴이 신과 천사에 대해 쓸 땐 글이 뻣뻣하고, 악마와 지옥에 대해 쓸 때 글이 자유스러운 것은 그가 진정한 시인이며 동시에 스스로 알지 못한 채 악마들의 편에 섰기 때문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블레이크는 밀턴이 사탄의 에너지와 카리스마에 넘어가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지 루카스는 악마의 편일까요? 아닌 것 같아요. 마지막엔 좋은 사람(루크)이거든요. 그래도 유혹을 받기는 했습니다. 루카스는 “새로운 희망”을 루크에 대한 이야기로 썼지만, 그의 상상력을 붙잡은 것은 베이더이고, 시스로드가 이야기의 중심부였습니다. 어둠의 편에 대한 매력이 이야기 전체에 긴장을 조성해 줍니다.

스타워즈는 여러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불교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질서에 대한 중요성과 부성애, 선택의 자유, 언제든 회개할 수 있는 가능성, 도날드 트럼프의 부상에 대한 이야기일 수 도 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에 대해서 그럴 듯한 명제를 만들 수 있어요. 다스 베이더가 루크에게 “느낌을 쫓아라, 넌 그게 진실이란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듯이, 그것이 바로 긴 시간 매력적인 이야기의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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