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소설과 영화

김영하와 이 소설의 팬들에게 있어서도 영화에 대한 평가는 꽤 크게 갈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꽤 지루하다는 평가도 종종 보였지만, 그래도 김영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기에 영화는 꽤 기대하며 봤다. 어쩌면 그렇게 크게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는 재미있었고 나름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도 든다.

스포일러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스토리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소설과 영화의 전개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읽은 지 조금 오래되어서 기억이 부정확할 수도 있지만, 소설에서는 영화처럼 극 초반부터 본인이 살인자임을 밝히지 않는다.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의 담담한 독백으로 소설이 서서히 진행되어 가고, 본인이 전직 연쇄살인마임은 중반이 지나서야 담담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이 사실이 드러나고나서 다시 책 앞 부분으로 돌아가서 몇 번 다시 읽은 기억이 난다. 주인공의 정체를 알고 나서는 똑같은 독백이 다르게 읽힌 다는 것이 책의 매력 중 하나이다. 그에 반해 영화는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살인자임을 확실하게 알려준다. 그 시점에서 주인공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사실 의미가 없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끝없이 이어지는 독백으로 알려준다. 소설도 독백의 형식이기도 하고, 주인공이 살이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원래 주변에 없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관객에게 너무 친절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주인공의 정체성에 대해 서서히 깨달아가는 바 없이, 곧바로 주인공이 살인자라는 사실을 못 박아 두고 여기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래서 소설과 영화의 장르도 달라졌다. 소설에서는 결국 주인공이 오래전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 외에 확실한 사실은 없다. 나의 주변을 멤도는 그 사람은 정말 살인자인가 경찰인가. 딸은 행복한 삶을 찾았나 내가 죽여버렸나. 최근의 살인 사건은 대체 누가 저지른 일인가. 주인공의 기억이 사라져 가면서 어떤 것도 선명하게 남지 않는다.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은 범죄소설과는 꽤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기억이 사라져 갈 때 나의 정체성은 과연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 꽤 극단적인 사례를 통해서 선명하게 보여주려는 것으로 읽혀진다. 그에 반해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확연히 스릴러 물로 보여진다. 오래전 아주 많은 사람을 죽인 타고난 살인자의 감각을 가진 주인공이 본능적으로 다른 살인범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살인범으로부터 사랑하는 딸을 지키기위한 사투를 벌인다. 이야기가 복잡하게 꼬이는 것은 이 탁월한 감각을 가진 살인마가 치매라는 것. 어느 순간 때때로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여기서 치매는 더 많은 사람을 죽여서 살인에 더 능숙한 킬러와 아직 젊고 경험이 부족한 킬러가 맞부딪칠 때, 나이로 인한 체력과 더불어 두 숙적의 힘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한다.

결국 소설과 달리 영화에서 치매는 어떤 특별한 사건이라기보다 유용한 소품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영화는 두 숙적의 대결로 치닫는 단선적인 이야기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경장 “안병만” 씨의 존재도 이런 종류의 영화가 주로 가지는 주인공의 조력자로 활약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죽는 그런 클리셰로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 소설의 재미를 기대하고 영화를 본 사람들이 재미없어하는 이유가 이런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앞에도 썼지만, 나는 관객에게 너무 친절하려고 노력한 독백이 감점요인이라고 느꼈고, 함께 영화를 본 아내는 왜 굳이 개그 욕심을 부렸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소설의 그 감각을 다시 느끼고 싶다면 아마 기대와는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새로운 소재(치매)를 활용한 범죄 영화로서 보자면 정말 재밌게 만든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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