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00K 참가 후기

작년에 트레일런trail run이란 것을 처음 알게 되어서 두 번 대회에 참여했고, 올해에도 상반기부터 한 번 나가보려고 기회를 보다가 마침내 서울100K로 다시 한 번 산악 달리기 대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내용을 들어가기에 앞서 간단히 정리하자면 작년부터 참여해본 세 개의 경기 중에서 가장 잘 준비되고, 스탭들도 친절한 경기이면서, 가장 어려운 대회이기도 했습니다. 대회 전에 몸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바로 전에 참여한 51km짜리 대회보다 거리는 조금 짧지만 상승고도는 오히려 훨씬 높아서 초반부터 다리가 후들거렸네요.

신청

50km 이상 트레일런 대회에 한 번은 참여하자를 올해 목표 중 하나로 생각했기 때문에 올초부터 적당한 대회를 찾아보았습니다. 그 중 고려했던 하나는 사정이 생겨서 못나가고 몇 개를 찍어놓고 고민하던 와중에 멀리 갈 필요없이 서울에서 할 수 있는 대회가 있기에 바로 신청할 마음을 먹었습니다. 접수 시작 전에 얼리버드 신청도 받아서 20% 할인 기회가 있었지만, 친구와 점심먹다가 깜박해서 놓치고 정식 접수가 열렸을 때 12만원 다 내고 신청완료 했습니다. (참고로 100km 코스는 20만원)

신청하면서 주의할 점 한가지만 짚고 넘어가자면, 50km 이상의 코스에 참여하려는 사람은 최근 6개월 이내의 건강검진 결과를 제출하거나, 대회에 참여해도 문제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과거에 참여한 일정 거리 이상 대회의 완주증을 제출해야합니다. 저는 지난 해 참가했던 DMZ Trailrun대회의 완주증을 제출하였습니다.

장비 검사

장비 검사는 대회 하루 전에 있었습니다. 지난 번 경기에서도 비슷했는데, 워낙 아침 일찍 출발하다보니 당일에 필수 장비를 모두 검사하려면 아마 장비검사만 세 시 이전부터 해야할 거에요. 장비 검사는 하루 전인 10월 18일 오후 세 시부터 밤 10시까지 진행이 되어서 그 중 시간될 때 잠깐 들리면 되고, 검사 자체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습니다.

저는 신청 당시에 장비검사 시간이 어떻게 될지 확실하지 않았고, 회사에 그 장비를 다 들고 오는 것도 버거운 일이어서 냉큼 휴가를 하루 내버렸지요. 그리고 저녁 8시부터 9시까지는 오리엔테이션이 있습니다. 그 전 대회의 경험을 빌려보자면 코스마크를 알려주고, 주의할 점, 코스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해주는데, 시간이 애매해서 저는 불참했습니다.

필수 장비에 대해서만 잠깐 짚어보면 아래 장비들이 포함되고, 대회마다 크게 차이는 없습니다. 이 중에서 헤드랜턴은 예전에는 없어서 없는대로 작은 플래시를 들고 갔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건으로 연락했다가 겸사겸사 물어보니 명확하게 헤드랜턴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좀 귀찮다하면서도 알리에서 하나 주문했는데, 막상 달리기 시작하고 무척 요긴하게 사용했습니다.

  • 레이스백팩과 트레일러닝화
  • 300kcal 이상의 비상식량 (에너지 젤 등)
  • 구급약품 (붕대와 테이핑 정도면 충분)
  • 물컵/물병
  • 헤드랜턴과 여분의 건전지
  • 방수가 되는 재킷
  • 담요 (서바이벌 블랭킷)
  • 휴대전화와 보조 배터리 1개 이상
  • 기능성 의류

바로 기억나는 것은 이 정도이고 CP 중 하나와 완료지점에서 정말 없으면 안되는 헤드랜턴과 방수재킷은 장비검사를 다시 한 번 하더군요. 전날 장비검사했다고, 그냥 빼먹고 왔다가는 실격처리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출발

출발시간은 원래 새벽 5시 반이었습니다. 그래서 4시 정도에 일어나서 출발하면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시간이 30분 당겨져 버렸네요. 그래서 3시 30분 정도로 알람을 맞추고 잤습니다. 혹시 쪽팔리게 제 시간에 못 일어나서 실격되는 거 아닌가 불안해하면서 잠들었는데, 다행히 시간맞춰 눈이 떠졌네요. 뛰다보면 나름 사진도 찍히니까 (경주 중에 스텝들이 사진을 찍어 줍니다. 그런데 그 전 2개 대회에서는 사진을 하나도 못 건졌어요. 분명 몇 번 찍히기는 했는데, 다운 받을 수 있게 올려준 사진 중에 제 것은 하나도 없더라구요…) 씻고, 면도도 하고, 머리도 나름 정리하고, 미리 검사받아둔 장비 가방을 통째로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출발장소인 서울광장에는 4시 40분 정도에 도착했는데, 벌써 대부분의 사람들이 준비를 다 끝나고 출발을 기다리고 있네요. 저도 옷 갈아입고 필수 장비 둘러메고, 나머지 짐은 가방에 담아서 물품보관소에 맡겼습니다. 옷을 갈아입는 중에 출발 장소로 모이라는 방송이 나오는 것을 보니 시간은 나름 잘 맞춰서 온 것 같네요. 한 가지 별 생각없이 그냥 분위기타고 출발하느라 물병에 물을 담는 것을 깜박했어요. 덕분에 처음 9.7km는 물 없이 열심히 뛰었습니다.


저는 언듯 나경원이라고 들었는데, 정말 나경원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유명인사의 시총과 함께 출발했습니다. 문을 통과하면서 기록이 시작되는데요. 문을 통과하면 정동길을 통해서 강북삼성병원 뒤쪽 행촌을 거쳐서 인왕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인왕산 초입과 성벽이 보이는 부분까지는 조명이 많은데다 렌턴을 켜둔 사람이 많이 몰려있어서 특별히 조명이 필요없었는데, 좀 가다보니 사람 사이 간격이 멀어지고 빛도 한 줌 없어져서 헤드랜턴이 꼭 필요했습니다. 대략 6시 30분 정도되니 어스름하게 밝아오네요.

끝없는 달리기

처음 대회를 시작하면서 목표는 10시간, 혹시 잘만 하면 9시간까지도 기록을 단축해 보겠다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지난 번 대회가 51km에 딱 9시간 59분을 찍었거든요. 세번 째 CP를 지나며 그게 말도 안디는 목표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내가 그 이후로 갑자기 힘이 나서 엄청 빠르게 뛴다해도 11시간 안으로 들어오기는 힘들었거든요.

기억을 좀 더듬어 보면 직전의 대회는 초반에 제법 가파른 언덕이 하나 있었고, 그 이후로는 상대적으로 평탄하게 느껴졌습니다. 특별히 경사랄게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 대회는 아래 코스를 잠깐 봐도 알겠지만, 나름 가파른 언덕이 세 개, 그 중에 하나는 다른 것의 두 배 정도로 높았어요. 더구나 이사한 이후로 근처에 산이 없어서 산을 달리는 연습을 잘 안했더니, 첫 언덕에서 벌써 다리가 후들거리고, 두 번째 산에서는 오르막을 좀 오르다보면 허벅지에 쥐가 나려고 해서 고생했습니다.

일단 오르막을 오르고 나면 내리막은 그래도 수월할 것 같은데, 실제 뛰어보면 별로 그렇지가 않아요. 물론 오르막에 비해서 몸에 걸리는 부하는 적은 편이지만, 내려올 때도 몸이 잔뜩 긴장하고 힘이 들어가서 힘듭니다. 일반 산길도 내려오다보면 미끄러지기 쉽고 이런 저런 돌부리가 있어서 몸에 힘을 바짝줘야하는데다, 특히 계단을 만들어 둔 곳은 계단을 내려올 때 몸에 충격도 많이 오고, 불규칙하게 만들어진 계단에서는 걸음도 좀 꼬이거든요. 그래서 오르막을 오를 때는 오르막도 힘들지만, 이 오르막 다음에 반드시 내리막이 나올 것이라는 것도 절 힘들게 해요. 징글징글하달까. 뛰면서 어느정도 체력을 비축할 수 있는 구간은 역시 평지밖에 없죠. 그런데 평지가 많으면 또 재미가 적어지고…

아무튼 몸이 좀 (많이) 힘들어서 그렇지 운영 측의 준비도 만족스럽고, 코스도 재미있었습니다.

준비, 체크포인트

트레일런 또는 울트라마라톤이라는 경기들이 코스는 상당히 길고, 또 그렇다고 생존 훈련같은 것은 아니니까 대회 참여자들을 위한 몇 가지 준비를 해둡니다. 국제 경기이다 보니 당연히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코스마크가 잘 표시되어 있고, 헷갈릴 법한 갈림길이나 복잡한 차도를 지나야하는 곳에는 스텝을 배치해서 길을 안내해주고, “화이팅” 정도는 외쳐줍니다. 물론 가끔 길이 나뉘는 곳에서 표시가 꼼꼼하게 되어 있지 않아서 헷갈리는 곳이 좀 있긴 했는데요. 크게 문제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체크포인트는 대략 10km 간격으로 4개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물과 음료, 과일, 간식, 몇 곳에서는 밥과 라면도 제공을 해줬습니다. 전에 나갔던 대회에서는 50km 참가자는 밥을 안주고 100km 참가자에게만 밥을 줬었는데, 여기는 공평하게 모두 주네요. 1번 CP에서는 몇 종류 과일과 오이, 물, 몽쉘같은 간식이 있었고, 저는 오렌지 하나 먹고 물 채워서 마시고, 오이 하나 집어들고 출발했네요. 두 번 째 CP에서는 밥도 줬습니다. 밥이라고 특별한 것은 없고, 설렁탕에 김치 따위가 반찬으로 나왔는데, 그것만으로도 훌륭하네요. 저는 한참 뛰었더니 잘 안 먹혀서 밥은 말지 않고 국물만 부어서 한 그릇 마시고 나왔습니다. 세 번 째 CP로 가는 중간에 숨겨진 CP가 하나 나옵니다. 여기서는 다른 CP처럼 기록 계측을 하지는 않고, 제 배번을 적고 배번의 사진을 찍어둡니다. 50km 대회에서는 이 코스가 가장 난코스로 다른 길로 돌아가는 것을 막으려고 여기 있었던 것 같네요. 처음 Hidden CP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 쯤에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습니다.

전에 참여했던 대회와 비교해서 조금 아쉬웠던 것 하나는, 공식 CP가 아니면 물 보충할 곳도 없었다는 점이었네요. 제가 챙겨간 물병이 생각보다 좀 작았는지, 마지막 코스에서는 중간에 물을 다 마셔 버렸거든요. 그 전 대회는 CP가 아닌 곳에도 물을 보충할 수 있는 곳이 한 두 군데 쯤 더 있었던 것 같아서요. 이건 대회 준비가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힘들다 보니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경주로

코스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인왕산을 오르는 것으로 시작하여, 북한산 둘레길 세 구간 (아마 7, 8, 9)을 돌고 북한산을 올라서 대동문을 찍고 내려온 다음에 다시 북한산 둘레길 세 구간 (1, 2, 3으로 기억)을 거쳐서 인왕산을 다시 찍고 시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공식적인 기록 측정은 인왕산을 내려온 직후라서 대략 48km 정도이고, 시청까지 돌아오면 49.7km가 되네요.

서울을 달린다라는 컨셉으로 서울의 매력을 보여주겠다고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매력을 나름 잘 보여준 코스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인왕산을 오르내릴 때는 바로 옆으로 성곽이 이어져 있고, 북한산과 그 둘레길도 — 계단이 오히려 불편하긴 했지만 — 여러 사람이 걷거나 뛰기 편하면서도 나름 우거져 있어서 아마 딱 그 구간만 도는 것이었다면 경치도 좀더 잘 즐길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높은 곳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때때로 커다란 빌딩의 숲이 우거지듯 모여 있거나, 또 어떤 곳은 키 낮은 집들이 산에 안기듯이 둘러쌓여 있어서 보는 맛도 있었어요.


딱 하나 마음에 안들었던 것은 인왕산에서 내려올 때쯤 되니 광화문 일대에서부터 마침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더라는 것. 제가 여러모로 마음에 안들어하는 소리이기도 했지만, 마침 좋은 산에 있는데, 그런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니 더 마음에 안들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산을 내려와서 보니 사람은 그렇게 많은 것 같지 않고, 이런저런 방송장비에서 들리는 소리가 너무 크네요.

마침

각설하고, 이미 너무 지친 상태였기에 마지막에 인왕산 정상을 오르는 길이 정말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북한산 대동문을 지나면서부터는 거의 뛰지도 못했어요. 마냥 걷기만 했던 것 같고. 그래서 기록을 보니 평균 시속이 딱 4km 정도네요. 인왕산을 마지막으로 오를 때는 성곽길을 따라 올랐는데, 계단의 높낮이와 간격이 제각각이라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런 애매한 계단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힘들어요.

그래도 내리막이 나오면
‘아, 이제 이 길이 끝나면 나도 끝이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안심은 됩니다.

그렇게 열심히 내려오다보니 문득 계측 장비를 든 두 분이 눈 앞에 보이고, 멀리서부터 벌써 박수를 열심히 쳐주십니다. 너무 지쳐서 걸어가고 싶은데, 저멀리서부터 박수를 쳐주시니 그냥 걷기가 너무 민망해서 마지막엔 또 몇 걸음 다시 뛰어 보았네요. 이렇게 인왕산을 내려오면서 공식 계측은 끝났고, 시청까지는 편히 걸어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시청까지의 코스마크가 제대로 되어 있지가 않네요. 올 때는 분명 정동길을 거쳐서 왔는데, 그 쪽 방향으로 안내하는 코스마크가 없어서 그냥 지도앱을 켜서 시청으로 찾아갔네요. 아마 정규코스는 아닌 것같은데, 거리는 비슷했을 겁니다. 오히려 조금 먼 것 같았어요. 공식 마지막 계측이 12시간 5분 정도, 시청에서의 기록은 12시간 34분이 나왔습니다. 북한산 중간에 길을 놓쳐서 잠시 헤맸는데, 그거 아니었으면 12시간 안에는 들어왔겠죠?

처음 피니시 라인을 들어올 때, 다른 선수들과 조금 다른 방향에서 들어오다보니 리본 들고 계시던 분이 저를 놓쳤어요. 내가 터덜터덜 걸어들어오니, 문득 저보고 혹시 완주 못하셨어요? 하고 묻더라구요.

“아니요?”

라고 말했더니,

“아이고, 너무 쿨하게 들어오셔서 완주하신게 아니신 줄 알았어요. 완주 사진 찍어드릴테니 얼른 다시 뛰면서 들어오세요.”

라고 말씀해주시네요. 그 와중에 사진 찍어주시던 여자 분 두분도 얼른 오셔서 마지막에 열심히 뛰어 들어오는 모습 연출해서 사진 찍었습니다. 이렇게 챙겨주니 문득 고마웠어요. (그런데 왜 정작 그 사진은 찾을 수 없을까요)

완주 기념품을 나눠주는 곳에서 다시 한 번 장비검사를 하고, 완주 기념품인 메달과 노스페이스 맨투맨 티를 받았습니다. 맡겨놨던 가방을 받아서 다시 옷을 갈아입고, 받은 식권으로 밥을 먹었네요. 식당 사장님이 원래 이런 데 관심이 많으신가봐요. 이번 경기 코스 짤 때도 나름 관여한 것 같고, 경기 마치고 온 사람들에게 무척 친절하시게, 샤워 안했으면 안에 들어가서 샤워하고 오라고 배려해주시네요. 전 귀찮아서 패스.

뛰고 난 당일도 몸이 뻐근하긴 했는데, 하루가 지나고 나니 걷는 것도 힘들정도이네요. 그래도 거실에 완주 선물을 펼쳐 놓고 보니 뿌듯한 기분이 듭니다.



짧은 감상

이제 겨우 세 번 째 나온 트레일러닝 대회이긴하지만, 아직까지는 매번의 달리기가 새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번 똑같은 것 하나는 출발하고 30분이면 왜 나왔나 후회가 든다는 거에요. 그래도 끝은 생각도 하지말고 지금 이 오르막만 오르자, 이 내리막만 버티자 생각하고 가다보면 어떻게든 완주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년에 비해 운동을 안했다는 것이 온몸으로 와닿는 운동이기도 하구요. 달린다기 보다는 걷는 수준에도 못 미치긴 하지만, 그래도 길을 밀어낼 때의 기분뿐만 아니라, 끝나고 나서 꽤 오랫동안 남는 성취감이 매력인 듯 합니다.

아쉬운 건, 제 사진을 남기기가 쉽지 않다는 것. 셀카를 찍을 생각은 거의 들지도 않고, 단지 달리다 보면 작가님들이 요소마다 나오셔서 사진을 찍어주시는데, 지난 번 대회도 그렇고, 찍힌 기억은 여러 번 있는데, 좀체 업로드되는 사진은 잘 없네요. 지난 대회에서는 첫 대회에서만 한 장 건졌는데, 이번 대회도 아직까지는 한 장 밖에는 찾지 못했습니다. 뭐 아쉽지만 없으면 하는 수 없죠. (이미 2주 째이지만 제 사진은 결국 한 장뿐이네요 ㅜㅠ)

다음에는 꼭 한 번 제주에서 대회를 나가 보고 싶습니다. 아마도 한라산 어귀를 달릴테니 서울보다도 훨씬 힘들겠지만, 최근 제주에 가본 기억이 참 좋았거든요. 어느 대회가 되었든 몸관리 잘해서 다음 대회는 꼭 기록을 단축해 보렵니다.

Ad Astra

영화에 대한 이야기다보니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래드 피트가 처음으로 출연한 SF 영화라는 광고문구로 인스타그램에서 영화를 처음 접했다. 그 광고에서는 영화의 끝에 충격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식으로 말했던 것 같다.

SF, 브래드 피트, 충격적인 결말.

재미없다고 말하기는 또 애매한 영화이지만, 최소한 충격적인 결말이라 할 만한 것은 없다. 오히려 이렇게 평범하고 무난한게 마무리된다는 것이 충격이라면 충격이랄까.

이야기의 시작

영화는 가까운 미래를 다루고 있다. 거기서 인류는 달과 태양계 안의 가까운 행성 — 화성 — 까지는 진출해 있고, 어떤 개척자는 저 멀리, 해왕성까지에도 발을 디뎠다. (착륙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주인공 — 로이 맥브라이드 — 이 일하는 낮은 궤도의 우주 안테나에서 갑작스래 고전압이 흐르며 큰 사고 발생한다. 알고 보니 이 사고는 전 지구적으로 발생하였는데, 진원지는 바로 해왕성이다. 그곳에 우주의 지적 생명체를 찾아 나섰던 로이의 아버지가 아직 살아 있으며, 무언가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그 사고는 로이의 아버지가 타고 나선 우주선의 동력원이었던 반물질이 불안정해져서 나타난 것으로 방치하면 전 지구적인, 인류의 크나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그렇기에, 로이는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하여, 아직 작동하는 장거리 통신장비가 있는 화성으로 향한다.

관찰자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보다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내도 영화를 보는 것이 마치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하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나도 영화에 빠져든다거나, 영화의 관객이 된 것이 아니라 사건의 관찰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영화는 시종일관 로이에게 집중한다. 그래서 영화가 기본적으로는 로이를 관찰하는 3인칭 시점에서 진행되긴 하지만, 로이가 잡히지 않는 화면은 거의 없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이고, 때때로 로이의 시선에서 다른 사람을 비추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연출은 영화 안에서 내가 로이의 시선으로 다른 이를 바라보기보다는 로이의 심리를 더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처럼 작동한다고 느껴진다.

통상 다른 영화에서라면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법한, 긴장감이 흐르고 깜짝 놀랄 일이 생기는 상황에서도, 감독은 시간을 정직하게 그대로 흐르게 하면서 그냥 이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어느샌가 영화를 보면서 긴박감 넘치는 사건에 놀라거나 몰입하기보다, 저 상황 자체를 곰곰이 따지면서 바라보게 된다.

‘저럴 수 밖에 없었을까,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혹시 다르게 행동했다면 어땠을까’

흐르는 강물처럼

영화가 시작하고 시간이 어느정도 흐르고 나니, 문득 흐르는 강물처럼이 생각났다. 어렸을 때 내가 무척 좋아했던 영화였다. 그 영화의 브래드 피트도 다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헌신했다. 따라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막연히 멋있어 보이는 사람.

그 영화에서도 등장 인물 각각의 목적과 서사는 있었지만, 영화를 관통하는 커다락 목표, 어떤 대의같은 것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평범하지는 않은 어떤 가족의 분투기였고, 특히 유별난 한 아들은 분투의 끝에 더욱 유별난 죽음을 맞았던 그래서 주변 어느 사람도 잊을 수 없게된 그런 이야기였다.

이 영화도 그러하다. 어쩌면 평범함이란 것에서 아주 크게 벗어나는 가족은 아니었을지 모르겠으나, 아버지의 꿈은 그런 작은 그릇에 담기기에는 너무 원대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 갈 수 있는 우주의 끝으로 향했고, 어째서인지 그 아들은 감정을 잘 내보이지 않는 목석같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영화의 시작을 보면 아마 이혼을 앞두고 있었던 것 같다. 별일없이 지나갔다면 아마 이혼하고, 지구 바로 바깥의 가까운 우주에서 군인으로서의 삶을 평범하게 해쳐 나갔을 것이다.

흐르는 강물처럼과 다른 점은 아버지 — 가 일으킨 사고 — 가 로이가 여행을 시작하게 한 동력이었다는 것이다. 아마 군의 상층부에서 로이를 콕 집어서 가라고 하지 않았다면, 아버지와 관련된 일임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쉽사리 떠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로이는 출발했고, 여행을 이어나갈 자신의 이유를 찾아낸 것처럼 보인다.

귀향

여행이라는 것은 결국 결핍이 있기에 떠난 것이고, 돌아올 때는 적든 많든 무언가가 채워졌기에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끝없이 여행을 떠나거나, 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결핍이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 착각해서 결핍되지 않은 것을 밀어넣거나, 채우면 채울 수록 구멍이 더 넓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로이는 불가능해 보였던 긴 여행 끝에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아무래도 길었던 여행에서 감정을 다시 채워 온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아니라면 아버지가 빼앗아 갔던 것을 힘겹게 추격해서 마침내 되찾아 왔거나. 예전 어디선가 모든 남자는 결국 아버지를 극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읽었던 것 같기도 한데, 로이는 영화의 끝에서 마침내 아버지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위대한 아버지일 수록 극복의 과정은 힘이 들고, 극복해내지 못한 자식은 어떤 식으로든 존재의 위기를 겪는다.

아무튼 마침내 로이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영화의 끝에서 보이는 로이는 영화가 시작할 때처럼 메말라 있지 않다. 관계를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으로 보이고, 상대의 가치에 대해서 깊은 주의를 기울인다. 삶이 다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단지, 로이의 깨달음을 위해 어처구니 없이 죽어간 화성발 우주선의 승무원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Now You See Me 1편과 2편

(영화에 대한 이야기이니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술을 이용해서 크게 한탕한다는 소재에 이끌려서 한참 전부터 한 번 봐야겠다고 생각하다가, 단숨에 1편과 2편을 동시에 봤다. 전체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볼거리가 매우 화려한데, 나름의 반전도 있는 전체 관람가 쯤 되는 유쾌한 액션영화.

1편이 나오고 시간이 제법 흐른 뒤에 2편이 나왔는데, 그래서그런지는 몰라도 두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평도 좀 갈린다.

1편

1편에서 영화는 실력은 좋지만 좋은 무대에 설 기회는 없었던 네 명의 마술사가 각자 한 장의 카드를 받으면서 시작한다. 이 카드는 일종의 초대장으로 넷은 한 자리에 모이고, 그곳에서 설계도처럼 보이는 입체 영상을 발견하면서 화면이 바뀐다.

네 명의 마술사는 그 이후 팀을 이뤄서 다 같이 마술쇼를 진행한다. 마술쇼는 트릭을 이용해서 은행을 털거나, 계좌를 해킹하는 것 따위다. 당연히 수사당국이 나설 수 밖에 없고, 프랑스(털린 은행이 프랑스에 소재해 있다)에서 온 인터폴과 FBI의 수사관이 팀을 이뤄서 마술사를 추적한다.

수사관은 당연히 마술에 익숙하지 않고, 관객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마술을 해설해줄 수수께끼의 남자가 수사관과도 거리를 두고 마술사를 뒤 쫓는다.

화려한 볼거리

기본적으로 마술이라는 것은 관객 주의를 다른 곳으로 빼앗고, 그 틈에 트릭을 빠르게 해치우는 것이다. 주의를 돌려야 하다보니, 마술사들이 보여주는 쇼맨십은 대단하다. 더구나 공을 들여 만들어지는 영화이다보니 영화에서 비쳐지는 볼거리는 더욱 화려하다.

영화 중간에 마술사들이 수사관에게 한 번 거의 추격 당 — 하는 척 — 하면서 마크 러팔로를 포함한 수사인력과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에도 마술의 트릭으로 보이는 것을 사용하면서 꽤 화려한 액션 장면을 보여준다.

그럴 듯한 설명

자잘한 트릭은 설명되지 않는다. 수갑을 다른 사람 팔목에 채워버리고, 상대가 가져온 콜라병 안에 열쇠를 넣는 것은 그러려니 해도, 그 외에 택도 없는 곳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은 감이 잘 안온다. 더구나, 메릿의 최면술은 결과만 놓고보면 무시무시한 기술인데도 너무 남발하는 느낌마저 있다.

그래도 큰 기술에 대해서는 모건 프리먼이 네 명의 마술사 — Four Horsemen — 를 뒤 쫓으면서, 그 마술이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수사관에게 친절히 설명해준다. 모건 프리먼 — 새디어스 — 마술의 속임수를 까발리는 일종의 저널리스트로 영화 내내 마술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마술의 속임수를 논리적으로 관객에게 설득하는 역할을 해준다.

아쉬운 결말

영화가 진행되어 가는 것을 보면, 네 명의 마술사는 마치 활빈당처럼 보인다. 처음 시작할 때 미스터리한 카드를 받고 팀을 이룬 것이니 더 큰 배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프랑스인 인터폴이 마술사들의 비밀결사인 디 아이 The Eye에 대해서도 떡밥을 흘리기 때문에 이야기가 진행되어 감에 따라서 대단한 결말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알게되는 것은 어렸을 때 마술사인 아버지를 잃은 어린 소년이 아버지의 죽음과 그 이후 보상문제에 관여된 사람/조직에게 복수를 하는 것으로 끝난다. 많은 사람을 열광에 빠트렸고, 네 명의 마술사가 인생을 걸게 한 이유가 단지 개인의 복수 때문이었던 것 뿐이다.

물론 마지막에 디 아이와 관련된 비밀의 장소로 들어가는 듯한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정말 디 아이에 들어갔는지는 상상에 맡길 수 밖에

2편

2편은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보기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중국계로 보이는 감독에 척 봐도 중국 자본이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프리뷰.
영화는 1편에서 큰 사건을 일으킨 포 호스멘이 여전히 숨어살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딜런은 이제는 포 호스멘에 대놓고 지시를 내리는 상사가 되어 있다.

화려한 볼거리?

2편에서도 볼거리는 여전히 화려하다. 멋진 장면이 연이어나오고, 액션도 무난하다. 그렇지만 그게 끝. 그냥 성룡 영화처럼 기발한 아이템을 사용한 액션 영화처럼 보일 뿐, 마술을 활용한 볼거리로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특히 악당에게 된통 당하고 나서 최후의 반격을 하는데, 여기 모여서 보이는 마술은 영화니까 연출할 수 있는 것이지 실제로 저런 길바닥에 갑자기 모여서 할 수 있는 일인가 싶은 짓을 한다.

가장 이해가 가지 않았던 장면은 연구소에 칩을 훔치러 들어가서, 네 사람이 서로 칩이 붙은 카드를 주고 받으면서 몸을 뒤지는 경비 요원들의 시선을 속이는 장면이다. 분명 카드를 손에 들고 몸 검사를 끝낸 사람이 이제 검사를 시작하는 일행에게 몰래 카드를 날려주고, 그 사람은 카드를 들고 위태롭게 몸 수색을 받는다. 그리고 자기 차례가 끝나면, 다시 아직 수색을 받지않은 자에게 카드를 넘긴다. 뭐하는 짓인지…

사라진 설명

1편에 이어 다시 세상으로 나온 세디어스는 더 이상 트릭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고, 갑자기 본인도 마술을 펼치기도 하는 적극적인 플레이어가 된다.

영화의 주인공인 딜런 로즈와 수 싸움을 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에 더 이상 트릭에 대해서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래도 가장 마지막에 비행기 트릭에 대해서는 포 호스멘이 직접 설명을 해주는데, 여기서 문제는 영화 속의 관객이 더 이상 마술쇼의 관객이 아니라는 점이다.

2편에서는 적극적으로 영화를 보는 외부의 관객을 마술의 관객으로 받아들인다. 풀어서 말하자면, 마지막 트릭은 영화속의 관객은 어떻게 트릭이 진행되고 어떻게 모두가 멋지게 속아 넘어갔는지 알 도리가 없다. 1편에서처럼 마술에 참여할 수 없을뿐 아니라 마술의 과정 자체를 보지 못하고 결과로 짠하고 나타난 것만 보며 환호할 뿐이다. 그러니 마지막 마술에 대한 설명은 사실 영화 속 관객을 위한 설명이 아니라, 영화 밖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을 위한 설명이 되는 것이다.

영화에 중국 자본이 들어간다는 것이 반드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돈이 더 들어가면 더 화려한 효과를 쓰고, 큰 스케일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테니까. 문제는 중국돈이 들어가면 꼭 그 티를 내야한다는 것이다.

그래비티처럼 우주정거장에 붙은 중국의 국기를 보여주거나 하는 것은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고. 그런데, 범죄의 거물인 백인이 왜 굳이 마카오에 숨어살아야하며, 주인공 일행은 왜 최면을 당한 채로 그 먼거리를 옮겨가야 했나.

딜런 로즈의 아버지 — 라이오넬 슈라이크 — 는 마술에 사용할 금고의 시제품을 왜 굳이 마카오에서 주문해야 했을까. ( 그 가게의 모자가 디 아이의 멤버라고는 하지만, 설마 그런 대단한 결사에 속한 장인이 마카오의 할머니뿐이진 않을 것이다)

산으로 가는 이야기

그러다보니 영화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설득력이 많이 약하다. 영화 초반에는 젊은 빌런이 마술사 네 명을 납치해와서 특별한 해킹 시스템을 훔쳐오게 하려는 것으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본인의 것을 훔쳐서 본인에게 다시 가져오게 만드는 것이었고, 1편에서 포 호스멘에게 호되게 당한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는 목적이 크다.

그런데, 복수를 하려고 했다면, 굳이 납치해와서 이런저런 어려운 심부름을 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훨씬 쉬운 방법이 하나둘이 아니다. 결국은 포 호스멘이 위기를 딛고 단단하게 결속한다는 동화를 써내기 위한 억지가 되어버리고 만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설명될 수 없는 기술이 영화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최면이다.

네 명의 마술사가 영문도 모르고 마카오로 끌려가는 것도 최면에 의한 것이고, 영화의 고비마다 위기를 고조시키거나, 문제를 풀어내는 것은 모두 최면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최면이란 것은 — 특히 영화에서 보여지기로는 — 그냥 툭치면서 몇 마디 내뱉으면 걸리고 마는 것이다보니, 영화의 긴장감을 없애버린다. “아, 뭐 저러다 최면거나보지머”

마무리

따분하고, 뭘 할지 모르겠다면 한 번 보기에 시간이 아깝지는 않은 영화다. 1편은 나름 퍼즐같은 재미가 있었고, 2편도 1편에서의 기대를 접으면, 나름 화려한 액션 영화 느낌은 난다.

하지만, 이야기의 얼개에 대해서도 마술의 교묘한 트릭에 대해서도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는 말자.

내가 쓰는 만년필

시작

어느 때인가 Graf von Faber-Castel에서 나온 나무로 만들어진 만년필을 보고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편하게 살만한 가격은 아니어서 그냥 머리 한 켠에 담아두기만 했었는데, 그러다 누나가 생일 선물을 보내준다고 해서 혹시 그라폰파버카스텔의 만년필을 사줄 수 있냐고 물었다. 누나가 사준 것은 그냥 파버카스텔의 만년필이었으나 그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기에 열심히 쓰려고 했다.

쓰려고 했다는 것은, 잘 쓸 수는 없었다는 거다. 잉크를 채우는 불편함 같은 것은 상관없었으나, 만년필을 쓰려고만 하면 펜의 잉크가 말라서 힘껏 흔들어 주거나 잉크가 든 튜브의 밸브를 살짝 돌려서 펜촉 쪽으로 잉크를 흘려주거나, 물에 한 번 펜촉을 적셔줘야 했다. 회의하면서 펜을 꺼내면 막상 안나오는 일이 많아서 점점 덜쓰게 되었다.

새 펜

그러다 미니언을 좋아하는 아내의 친구에게서 저렴한 만년필을 얻게되었다. 가볍게 써봤는데, 의외로 적당히 잘 나왔다. 펜촉이 너무 거칠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파버카스텔의 만년필처럼 잉크가 마르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좀 쓰다보니 좋은 만년필에 약간 욕심이 들었다. 그렇다고 아주 좋은 것은 필요없고… 그래서 아마존을 조금 뒤져보니 LAMY의 Ruthenium이라는 이름의 펜이 보였다.

라미는 플라스틱이 많아서 좀 망설였는데, 금속 계통인 듯하여 마음에 들어 Extra Fine 펜촉으로 주문했다. 그러고 얼마 뒤에 회사에서 경력직 입사기념으로 또 EF 펜촉의 라미 만년필을 선물해줬다. 이 녀석은 짙은 회색의 플라스틱인 대신에 내 이름을 영문으로 새겨줬다. 둘 다 잉크가 마르는 일 없이 잘 써져서 요새는 이 두녀석을 들고 다니며 주력으로 사용한다.

비교

위에서 부터 차례대로 파버카스텔의 만년필, 저렴한 미니언 만년필, 아마존에서 구입한 라미와 회사에서 준 라미이다. 미니언의 경우에는 잉크가 거의 닳았는데, 잉크 카트리지를 못 찾아서 그냥 썼기에 글자가 좀 끊긴 면이 있다. 파버카스텔과 미국 라미의 EF 펜촉은 내 기준에서는 충분히 가늘어서 글씨를 쓰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진 상에서는 파버카스텔이 더 굵어 보이는데, 잠깐 사이에 잉크가 말라서 또 물에 한 번 담궈서 그렇다. 계속해서 쓰는 중에는 오히려 좀더 가는 느낌이다.

내 생각에는 오히려 너무 가늘다 보니 펜이 마르는게 아닌가 싶은 정도여서, 집에 두고 가끔 스케치 연습할 때 사용한다. 가끔이다보니 매번 펜촉에 물을 뭍혀서 쓰게된다. 위 그림에서 보다시피 획이 상당히 날카롭고 가늘게 써진다.

라미는 둘 다 EF 펜촉임에도 굵기가 다르다. 회사에서 준 것은 아무래도 한국에 들어온 그대로일텐데, 더 굵다. 한글처럼 획이 끊기는 글씨체에는 좀더 가는게 맞을텐데 왜 더 굵게 들어오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밖에는 크게 다른 것은 없다. 종이에 쓸 때도 만년필 특유의 사각사각하는 느낌 외에 거칠게 종이를 긁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사용

위에도 말했듯이 파버카스텔 만년필은 집에서 한 번씩 그림 연습 — 이라고 해봐야 한 달에 한 범도 잘 안그려서 실력은 도무지 늘지 않는다 — 할 때 쓰는 편이다. 다른 도구에 비해 더 편하거나 쓸만한 효과 같은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종이에 선을 그을 때의 그 느낌이 좋다.

라미는 펜 주머니에 담아 들고 다니면서 일상적인 필기에 사용한다. 주로 쓰는 것은 좀더 가는 촉의 라미이고, 플라스틱 라미에는 파란 잉크를 담아서 쓸 예정이다.

미니언 만년필은 지금은 쓰지 않는다. 종이 위에 선을 긋는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아서 손이 잘 가지 않는다.

메일, 다시 기본으로

계기

지금 찾아보니, 2016년에 Airmail에 대한 글을 썼다. 그 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을테니, 메일 클라이언트로 에어메일을 써온 것이 벌써 3년은 된 것 같다. 그 기능을 특별히 잘 활용해온 것은 아니지만 쓰면서 크게 불편한 점도 없었기에 굳이 바꾸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떠한 이유로 과거의 메일을 검색해볼 필요가 생겼다. 에어메일에서 검색을 해봐도 결과는 나오지 않았고, 해당되는 폴더로 가서 하나하나 찾아봐도 특정 시점이 되면 더 이상 메일이 불러와지지도 않았다. 그 순간에는 모바일의 한계려니 하고, 노트북에서 Gmail로 접속해들어가 메일을 찾아냈다.

조금 지나서 생각해보니, 꼭 그렇게 검색이 안될 것 같지는 않아서 당장 몇개 클라이언트를 시험해봤다. 아웃룩은 에어메일과 검색결과가 다를 바 없었지만, Readdle에서 만든 Spark는 내가 원하는 검색결과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을 확인하고, Spark를 쓰기로 마음 먹었다.

Spark를 쓰다가 문득 생각났다. 기본 메일앱에서는 결과가 어떻게 보여질까?

그래서 한 번 테스트해보니 Spark처럼 제대로된 검색 결과를 보여준다.

예전에는

예전에 기본 메일앱을 쓰지 않고, 외부 개발자가 만든 메일앱을 기웃거린 이유는 당연히 기본앱에서 불편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1. 나는 인박스로 들어온 메일을 확인한 다음, 필요없는 것은 삭제하고 보관해둘만한 것은 보관소로 보낸다 (Archive) 기본 메일앱은 둘 중 하나만 하기는 쉽지만 두 가지를 다 하려면 번거로워진다.
  2. 특히 예전에는 종종 받은 메일을 OmniFocus나 Things같은 앱으로 보내거나, 에버노트 등에 저장해뒀다. Airmail에서는 미리 Action을 지정해두고 한 번 스와이프로 메일을 다른 앱에 보내고 보관까지 할 수 있었다. 기본 메일앱에서는 내용 전체를 복사한 다음에 해당 앱으로 가서 붙여넣기 하는 수 밖에는 없었다.
  3. 그리고 조금 더 나은 사용자화. 기본 메일앱에 비해서 내가 사용하기 조금 더 편하게 메뉴나 스와이프 액션을 바꿔둘 수 있었다. 이런 면에서는 특히 Airmail이 뛰어났다.

이런 이유로 처음 에어메일이 출시되었을 때 구입했고, 특별히 문제가 없으면 (할일 앱을 제외하고는) 그냥 정착하는 편이어서 오랫동안 에어메일을 써왔다. 그러다가 앞서 쓴 것처럼 검색결과에서 의문을 느끼고 다른 앱을 둘러보기 시작한 것이다.

난 헤비유저는 아니어서

사실 나는 그다지 헤비유저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편이어서, 에어메일의 다채로운 기능도 잘 사용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렇게 열심히 쓸일이 없었고, 몇 가지 편리한 기능만 골라서 써왔다. 그나마도 최근들어서는 더 적게 쓰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막상 기본 메일앱을 사용했을 때, 크게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예전에 불편하게 생각했던 요소가 사실 거의 그대로 남아있긴 했지만, 이제는 그게 그렇게 핵심적인 요소로 남아 있지 않게되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iOS 13(아이패드에는 iPADOS 13)을 올려서 사용해보고 있는데, 기존에 기본 메일앱을 쓰면서 불편했던 사항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여전히 메일 전체를 다른 앱으로 한 번에 보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스와이프를 통해서 삭제/아카이브를 쉽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메일 내용을 확인하다가 답장 버튼을 누르면 아래와 같이 답장/전달에 더해서 삭제, 아카이브, 정크로 보내기 등이 생긴다.

그래서

아이폰에서는 다른 메일 앱은 모두 지워버리고 기본 앱만 사용하고 있다. 아이패드에서는 비교를 위해서, 또, iOS 13의 메일앱이 아직 불안정하여, 여전히 스파크와 에어매일을 깔아두고는 있지만 곧 지워버릴 생각이다. 중요하지 않은 곳에서 굳이 복잡해야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이 다음으로는 할일 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려고 한다. 지금까지는 OmniFocus와 Things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과연 내가 할 일이 그렇게 복잡할까. 그냥 미리알림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iOS 13의 미리알림은 그 전에 아쉬웠던 사항들이 다수 해소가 되었다.

Beoplay E8, 1년 5개월

영수증을 찾아보니 내가 E8을 주문한 날짜가 2017년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휴일 제외하고 사나흘 정도 지나서 받았을테니, 이제 사용한지 1년 5개월 정도 되었다. 지금 6월이 다 지나가는 와중에 5개월이라고 한 것은 5월 중순 수리를 맡겼기 때문이고, 얼마 전에 교환품을 받은 김에 간단히 그간 쓰면서 새로 느끼게 된 것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수리를 맡기고 교체품을 받기까지 거의 한 달 정도가 걸렸다. 그 동안 번들 이어팟을 사용했는데, 줄 없는 이어폰을 사용하다가 갑자기 전화기와 내 귀가 줄로 연결되고 보니 상당히 불편했다. 역시 안 쓸 때는 몰랐지만, 한 번 알게되면 다시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 음질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만이 없다. 사실 특별히 더 좋다는 생각도 잘 들지는 않았었는데, 막상 수리를 맡기고 이어팟을 자주 듣다보니 소리가 좀더 충실하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다. 어쩌면 오픈형과 인이어 타입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 같은 맥락에서 인이어가 상대적으로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팟을 끼면 주변 소음이 너무 크게 들려서 자주 소리크기를 지나칠 정도로 높여야했다. 그러고서도 음악이나 팓캐스트가 잘 안들릴 때가 많았다.
  • 1년이 넘게 사용했지만, E8의 터치 조작은 여전히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두 번 연속의 터치를 거의 대부분 한 번의 터치로 인식한다. 그래서 다음곡으로 넘기기를 할 때, 자주 음악이 정지된다.
  • 이전 곡으로 넘기기는 왼쪽 유닛을 두 번 연속 탭해주는 것이다. 당연히 한 번에 인식하는 경우가 잘 없는데, 왼쪽 유닛을 한 번 탭하면 트랜스패런시모드가 작동해서 갑자기 외부 소리가 크게 들린다. 이전으로 넘기는 일이 많지는 않은데, 해야할 때는 그냥 전화기에서 조작한다.
  • E8의 터치부를 세 번 연속으로 탭하면 시리를 호출한다. 일단 세 번 연속으로 탭하는 것부터가 너무 어렵다. 또, 그렇게 부르면 재생중이던 음악이나 팓캐스트가 끊기기도 하고, 시간도 꽤 길게 걸리는 편이라 잘 사용하지 않는다.
  • 탭할 때 나 스스로 체득한 그나마의 팁이라면, 검지손가락으로 유닛을 받쳐주고, 엄지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겨 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유닛 위치를 기준으로 잡을 수가 있어서 탭이 제대로 될 확률이 그나마 높다.
  • 몇 번 E8을 착용하고 통화를 시도했다. 대부분 내 목소리보다 소음이 너무 크게 들린다고 하기 때문에, E8을 끼고 있다가 전화가 오면 (혹은 전화를 걸어야하면) 자연스레 한 쪽을 빼서 손에 들고 그 쪽 귀에 전화기를 가져다댄다.
  • 유닛을 빼야할 일이 있으면, 주로 오른쪽 유닛을 뺀다. 오른쪽이 주 유닛이어서 오른쪽을 빼야 음악이 멈추기 때문이다.
  • 1년 반에 가까워오다보니 재생가능 시간이 가파르게 줄어 들었다. 그래도 2시간 이상 유지가 되었는데, 어느순간 시간이 줄어들더니 2주 정도만에 1시간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아래에 다시 쓰겠지만, 메일로 문의하고 AS를 맡겼더니, 기기 문제가 맞다고 판정하고 새로운 유닛으로 교환해 주었다.
  • 한 번에 아주 오랫동안 음악을 듣는 편은 아니어서, 4시간의 배터리 타임은 불편함이 없었다. 충전도 회사 도착해서 그냥 끼워두는 편이라 특별히 귀찮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가방 없이 이어폰을 들고 나갈 때, 차징 케이스의 부피는 은근히 불편하다.
  • 운동할 때, (헬스장에서나 달리기 할 때나) E8을 착용한다. 수리를 맡긴 동안에는 운동할 때 아예 음악을 듣지 않았다. 인이어 타입이라서 그런지 귀에 잘 고정되어 빠지지 않는다. 예전, 이어팟을 귀에 꼽고 달리기를 할 때는 유닛이 자꾸 흘러내려서 여간 걸리적거리는 것이 아니었는데, 무선 이어폰(백비트 핏/H5 → E8)을 사용하면서부터는 그런 불편함에서는 해방되었다. B&O에서는 E8이 Sweat-Proof라고 하는데, 땀에 젖어서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 물론 운동하면서 땀을 많이 흘리고 나면, 폼팁이 땀에 잔뜩 젖어버릴 때가 있다. 제대로 말리지도 않고 바로 다시 착용하는 것은 좀 찝찝하긴 하다. 귀도 축축하고.

수리 후기

위에 잠깐 썼다시피 2시간 정도 듣고나서도 50% 정도의 배터리가 남아있던 E8이 어느 순간 배터리가 줄기 시작하더니, 2주가 채 지나지 않아서 1시간도 가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러면 중간에 충전을 해주더라도 달리기나 다른 운동 중에 음악이 끊겨버리고, 출,퇴근 시간도 간당간당해져서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먼저 이메일로 문의했더니, 유닛을 초기화해보고, 펌웨어를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 해보라는 답이 왔다. 펌웨어는 이미 최신이어서 유닛을 초기화해봤더니, 그래도 겨우 1시간 살짝 넘는 수준. 그래서 B&O 홈페이지에서 바로 AS를 신청했다. 신청과정에서 구매 증빙을 올리도록 되어있어서 영수증을 겨우 찾아서 올리고, 문제가 무엇인지 질문에 맞춰서 작성했다.

접수를 끝내고 나면, 이메일로 페덱스의 통관서류가 오고, 페덱스 담당자와 따로 연락해서 예약을 잡도록 한다. 페덱스로 물건을 보낼 때는, 당연히 제품(유닛과 차징케이스)과 부속물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어팁은 소모품이어서 필요 없지만, 케이블은 반드시 넣어서 보내야한다.

물건을 보내고 나면 아래처럼, 배송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틀만에 물건이 홍콩에 도착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 깜깜무소식이라는 것. 2주 정도 지난 다음에 문의해봤는데, 한 편에서는 물건 확인해서 상태 업데이트되면 알려준다고 하고, 또 다른 편에서는 물건 못 받았으니, 어서 보내라고 한다. 내 물건 어디 있냐고 전화까지하고, 메일로 한두번 실랑이를 하고서야 4주 정도 지났을 때, 이어폰 검사가 다 끝났으니, 곧 이어폰을 보내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러고는 또 이제 검사를 시작했다는 메일을 받기는 했으나 며칠 지나지 않아서 검사가 끝났고, 검사결과 제품 이상이 맞아서 새로운 제품을 보내주겠다는 메일을 받았다.


다음 주로 바뀌어야 물건을 받을 줄 알았는데, 이 처럼 물건 발송 후 이틀만에 이어폰을 받을 수 있었다. 물건을 다시 받고 나서 생활 패턴은 다시 예전처럼 돌아갔다.

하나 더, 나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서 홍콩에 직접 수리를 의뢰했는데, 물건을 다시 보내주면서 이메일을 통해 워런티 문서(PDF)를 다시 보내주었다. 내가 물건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날짜를 기준으로 다시 보증기간을 2년 — 2021년 6월 26일까지 — 늘려준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교환받은 사람은 따로 얘기를 못 들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직접 교환이 더 유리할 수 있겠다.

나는 원래는 교환품을 받으면, 미개봉 새제품 정도로 팔고 다른 것을 써볼까 했는데, 워런티가 연장된 것을 보고 그냥 현 제품을 주욱 쓰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이폰 6S Plus, 디스플레이와 배터리 교체

전화기를 살짝 떨어뜨렸다.

기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참에 허벅지 높이도 안되는 곳에서 부드러운 바닥에 살짝 떨어뜨린 것 뿐이다. 그래도 화면 한 쪽에는 뾰족한 무엇엔가에 찍힌 듯 좁고 깊게 파여있고, 그 점을 중심으로 디스플레이에 긴 금이 여러 줄 생겼다. 아직 2년은 더 써야 하는데… 올초 설에 벌어진 일이다.

부모님 댁에 도착하자마자 알리익스프레스에서 디스플레이를 주문했고, 하는 김에 대략 1년 전에 한 번 교체했던 노혼의 호환 배터리를 하나 더 구입. 그러고는 한 달을 기다렸다.

배터리 교체

최소 아이폰 6S까지는 배터리 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홈버튼의 지문인식 관련 부품도 디스플레이에 딱 붙어 있고, 공식적으로 방수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테두리의 접착을 뜯어내는 것도 크게 부담이 없다. 다만 이번에는 화면이 깨져 있으니 뚜껑을 뜯으면서 깨진부분이 바스러지지 않게 주의하기만 하면 된다.

배터리를 교체하는 장면은 유투브를 참고했다. 처음 한 번은 그냥 자세히 살펴보고, 그 다음엔 장면장면 일시정지 해가면서 따라하면 어렵지 않다.

주의할 점은,

  1. 확 제끼다가 화면이 깨지지 않도록 할 것
  2. 화면을 처음에 90도까지만 들어야한다. 디스플레이와 본체 보드의 커넥터가 찢어지지 않도록 주의
  3. 배터리를 고정시킨 접착 테이프를 끊어지지 않게 뜯을 것: 이건 테이프가 꼬이지 않게 잘 펴서 아주 천천히 잡아당기면 그런대로 잘 된다.
  4. 접착테이프를 뜯어내지 못했을 때, 무리해서 뜯으려다 배터리가 꺾이면 불이 붙기도 한다고 들었다.

조립은 역순으로 천천히 하면 된다.

새로운 디스플레이

배터리 교체가 끝나면 이제 화면을 갈아야 합니다. 화면은 아마 풀세트를 사서 통째로 갈았다면 쉬웠을지 모르겠는데, 내가 구입한 것은 20달러 미만의 제품들로 지문인식 센서는 물론이고, 전면카메라 부속도 붙어 있지 않아서 기존 디스플레이에서 곱게 떼서 붙여줘야한다.

이 역시 유투브에 올라온 동영상을 참고해서 작업했다. 먼저 한 번 필요한 부분을 보고, 화면을 켜서 작업 중인 부분을 돌려보면서 천천히 진행했다.

홈버튼

가장 걱정했던 것은 지문인식센서. 혹시나 선을 끊어먹거나 고장이라도 나면 다른 부품으로 교체할 수도 없고, 터치ID를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생각보다는 쉽게 분리가 되었다. 접착제가 붙어 있어서 드라이기로 조금 데워서 힘을 주어 살짝 뜯어냈고, 다른 부분은 나사만 잘 풀면 괜찮았다. 새 제품에 다시 부착할 때는 접착은 신경 쓰지 않고, 나사만 적당히 조여주면 OK.

처음 나사를 너무 꽉 채웠더니 홈버튼 눌리는 느낌이 없어져서, 다시 살짝 풀어줬더니 적당히 딸칵하는 느낌이 생겼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홈버튼을 얹고 나사를 채울 때 순서에 맞게 포개놓지 않으면 마지막에 화면이 눌린다는 것이다.

전면부 카메라

개인적으로는 디스플레이 교체하는 과정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게 느껴졌다. 접착된 부분을 처음 때어낼 때도 연결선이 상당히 가늘어서 끊어먹을까봐 걱정되었고, 커넥터가 몇 개 모여있다보니 적당한 순서로 포개는 것과 덮개를 잘 덮는 것까지 번거로운 편이었다. 접착부를 뜯고 나서 다시 조립할 때도 새 제품의 스티커를 살짝 벗겨서 다시 접착부에 붙여줘야했고, 정작 카메라 렌즈 부는 마지막 덮개를 덮고 나사를 다 채울 때까지 특별히 고정해둘 방법이 없어서 손이 많이 간다.

화면 뒷판

화면 바로 뒤의 철판은 쉽다. 테두리를 따라 7개 정도의 나사를 잘 풀어내서 새제품에 다시 잘 덮고 조여주면 끝. 다만 터치ID를 조립할 때 뒷판을 풀고, 터치ID를 조립하고, 그 다음에 다시 뒷판을 조립해 줘야한다. 혹시나 나처럼 터치ID 나사를 하나 깜박했다면, 괜히 이리저리 시도하다가 시간만 버리지 말고 뒷판부터 바로 뜯어내자.

다시 한 번

새로운 디스플레이를 다 조립하고 났더니 불량이었다. 화면은 오히려 예전 제품 윗부분 구석에 빛샘이 있었는데, 그것도 해결되었고 화면이 깨끗하게 표시된다. 그런데 처음 암호를 누르는 화면에서 4, 5, 6 바로 아랫부분부터 독이 있을 부분 바로 위 정도까지가 터치가 먹통이다. 가로화면 모드까지 동원해서 시도해 본바 딱 그 영역의 직사각형 부분이 터치가 되지 않는 불량.

일단 바로 환불 신청. 혹시 사설에서 고쳐볼까 하고 다음날 새 디스플레이를 달고 출근을 했는데, 사설은 터무니 없는 가격(19만원이었나)을 부르길래 바로 마음을 접었다. 하루 고생하고 나서 집에 와서는 바로 불량품을 분리하고, 깨진 화면을 다시 붙여 놓았다. 그러고는 새 제품을 비슷한 가격인 19천원 정도에 주문하고 다시 한 달을 기다렸다.

그리고 위의 화면 교체 작업을 한 번 더 했는데, 이번에는 접착제도 이미 모두 떨어져있었고, 한 번 해봐서 손에 익은지라 훨씬 쉬웠다. 그러고 다시 말끔해진 전화기를 쓰기 시작했다. 터치가 자주 끊어지긴했다. 신경쓰이지만 너무 짜증나서 전화기를 집어던지고 싶지는 않은 정도. 아내는 자기 보기에 화질이 더 안 좋아진 것 같다고 했다. 자글자글. 그래도 어쩌겠나, 써야지.

아름답게, 마무리

그렇게 다 교체를 하고나서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아내가 전화기를 새 것으로 바꾸자고 했다. 원래는 1년 정도는 더 쓰려고 했는데, 특히 새로운 아이폰의 인물사진 모드가 탐나서 넘어가기로 한 듯. 마침 국내 통신사에서 보조금도 제법 나오길래 아내가 먼저 바꿨다. 그리고 다음 주 건강검진이 있던 날 오후에 나도 새로운 전화기로 바꿨다.

홈바도 나름 편하고, 페이스ID도 나쁘지 않다. 인물사진 모드는 상당히 유용해서 만족스럽게 사용 중이다. 며칠 전에는 구입하고 한 달이 다 지나기 전에 JCB 카드를 발급받아서 아내와 나의 새 아이폰에 애플케어플러스를 가입해 두기도 했다.

심각한 수준의 외과수술을 버텨내고 기사회생한 내 아이폰6S Plus는 먼저 배를 가득 채운 다음, 잠든 채로 자신의 쓸모가 발견되길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