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두통 — 올리버 색스

접점

올리버 색스는 과학하고 앉아있네라는 팟캐스트에서 진행한 과학책이 있는 저녁에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는 책과 함께 소개해주는 것을 듣고 알게 되었다. 팟캐스트를 듣던 당시에는 다른 것보다도 책을 통해 소개되는 기이한 정신병적 증상을 신기해하고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으레 그렇듯이 기회가 되면 책을 한 번 사봐야겠다는 생각만 품고 시간을 그저 흘려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올리버 색스가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제서야 시간이 더 지나면 그의 책을 읽을 생각도 하지 못할지 모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전자책으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뮤지코필리아, 편두통, 온더무브를 구입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꽤 쉽게 읽혔다. 그가 치료 또는 상담을 했던 환자들의 이야기를, 환자들의 개인정보가 드러나지 않게 살짝 재구성하여 이야기를 풀어준 것이다. 한 편 한 편 그의 글을 읽다보면 사람에 대한 애정과 사려 깊은 배려, 그리고 단지 화학적, 생체적인 분석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총괄적인 이해를 통해 병을 원인을 찾아가려는 노력이 느껴진다.

그리고 문득, 내가 지금 이렇게 어떤 평범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조차도 어쩌면 가느다란 줄 위를 조심스럽게 걸어 나가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들고 있는 길고 무거운 장대가 내 중심을 잘 잡아 주겠지만,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

이 책에서도 저자는 여전히 사려깊고 친절하지만, 그렇다고 책 자체가 그리 친절하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 책의 옮긴이도 책이 어렵고 모호한 부분이 많았음을 맨끝 옮긴이의 말에서 고백하고 있다. 어쩌면 올리버 색스도 아직 편두통의 모든 것을 알아내지는 못한채, 탐구를 계속하면서 책을 썻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책을 읽으며 힘들었던 것은, 앞서 읽었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비해서 사례에 대한 서술은 매우 간략하고, 뜸한 반면에 전문 용어가 무척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편두통을 겪을 때, 일어나는 현상을 짐작으로 묘사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편두통 그 자체에 대하여 공부해보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이 책을 찾아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도 굳이 편두통을 자세히 공부해 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고, 지금도 내가 이 책을 통해 알게된 것 이상으로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 책은, 앞서 말했듯이 올리버 색스가 상담 또는 진료한 환자들의 사례를 차례로 소개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편두통이라는 병증 하나에 집중하고 있다. 먼저, 편두통이 어떤 것인지 소개하고, 편두통이 발병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과 사람이 겪는 일, 편두통의 원인과 이를 고려한 여러가지 치료방법 및 그 역사, 편두통을 어떻게 다루어야할지에 대한 본인의 생각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사례는 환자들이 편두통을 겪는 동안 보는 환각 등을 그린 도식과 함께 환자의 증상과 특정 치료를 수행하거나 수행하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짧고 건조하게 기록해 둔 것이다.

편두통

나는 이라는 한자가 어느 한 쪽을 뜻한다고 이해해 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편두통이라는 증상은 그저 머리 어느 한쪽이 국소적으로 아픈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굳이 이름이 따로 붙은 것은 그 한 쪽만 아픈 증상이 꽤 흔하고 통증이 심한 편이기 때문이라고 믿었는데, 이게 그렇게 단순하진 않다는 것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어느 한 에피소드를 통해서 접했기 때문이었다.

책을 통해 이해하기로 편두통은 화학적 또는 전기적인 신호의 교란으로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머리가 깨어질 듯이 아프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날 수 있는 여러 증상 중에서 어느 하나일 뿐이다. 심지어 복부 편두통이니 하는 식으로 머리가 아닌 다른 곳이 아픈 경우도 있다.

편두통이 일어날 때의 증상은 여러 단계로 나뉘어 지는데, 편두통 아우라(Aura)라고 불리는 일종의 전조 증상과, 여기에서 이어지는 극심한 발작과 고통, 그리고 고통에서 회복되며 증상이 마무리된다. 일주일에도 여러 번 발작을 경험하는 사람이 있고, 몇 주, 몇 달, 또는 몇 년에 한 번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증상에 있어서도 순식간에 극심한 고통에 빠지고, 여러가지 환시/환각을 겪다가 두어 시간 이내에 마치 죽음에서 부활하듯이 회복하여 넘치는 에너지와 상쾌함으로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고, 몇 시간이 넘도록 지리하게 이어지는 고통을 겪고, 고통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진이 빠져서 꼬박 며칠을 고생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여전히 신비롭게 느껴지는 것은 편두통 아우라이다. 간질의 발작과 비교할만 하지만, 여러 부분에서 상당히 다르다. 책을 기준으로만 생각하자면, 간질은 주로 신체적인 반응에 집중되는 것으로 보이며,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그에 비하여 편두통 아우라는 신체적인 반응에서부터 환각/환시 등 감각적인 것을 거쳐 마침내는 어떤 종류의 고양감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으로 보이며, 시작부터 회복에 이르기까지 길면 수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겉으로는 길게 늘여놓은 간질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면의 작용은 크게 다른 것 같다.

그 치료법은 여러가지가 알려져 있으나, 완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모든 환자에게 통용될 수 있는 방법도 없는 것 같다. 대부분은 약을 사용하는 것 같은데, 환자가 편두통을 겪는 주기나 환자가 느끼는 심각한 정도, 어느 수준까지 증상이 진행되었는지 등을 고려하여 그 수준에 맞는 약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편두통의 치료라는 것은 그냥 그렇게 증상을 없어지게 하는 것으로 끝나는 문제는 아니다. 어쩌면 편두통만이 아니라 정신이 관여되는 많은 병이 그러할지도 모르겠다.

치료

위에도 간략히 썼듯이 편두통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방법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병의 진행과 환자가 겪고있는 수준에 맞춰서 적당한 약을 쓰면 상당부분 그 발현을 억제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약을 먹는 방법도 내복하거나 주사제로 맞을 수도 있고, 정기적으로 미리 약을 먹거나 증상이 시작되는 초기에 주사를 맞을 수도 있다.

이러한 치료법을 통해서 어느정도는 편두통이 완화될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단순히 편두통 증상을 없애는 것 만으로 치료가 이루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장 치료가 되었다고 생각되었을 때도 몇 달 길면 2~3년 후에 다시 증상이 강화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원래 있던 편두통이 없어진 대신에 그 시간에 다른 종류의 발작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리고 병이 사라진 자신에게 적응해야하는 문제가 있다. 편두통처럼 삶의 어느 순간을 가져가는 병은, 그 병으로 앓아온 시간이 오래될 수록 삶의 한 부분이 되어간다. 그래서 마침네 그 증상을 완화하거나 자신의 삶에서 제거했을 때, 어떤 이들은 그 병의 부재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상황과 비슷한 지도 모르겠다.

예전 매일같이 밤 10시까지 야근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밤 11시 정도가 되는 여자분이 있었는데, 어느 날은 6시 제 시간에 약속도 없이 퇴근을 해서 집에 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 시간에 집에 와 본 적이 없어서, 뭘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티브이를 켜두고 멍하니 보고만 있다가 11시에서야 문득 정신을 차렸다고 한다. “아 맞아. 씻고 자야지”

병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

병과 치료에 대한 관점에서도 색스의 사람에 대한 따스한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정신병적 증세가 있는 것을 그 증상자의 개인적인 문제로 보지않고, 병을 통해서 그 사람이 해소하고자하는, 또는 얻고자 하는 무언가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 단순히 병인을 제거하는 것을 치료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병이 그 사람의 인생에서 대체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찰한다.

어쩌면 현대 사회에서 완전히 건강한 상태로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지도 모르겠다. 한 편으로는 급박하게 움직이는 도시에 갇혀서 강한 스트레스에 눌려 살기 때문일 것이고,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우리가 원래의 수명을 넘어서서 아주 오래 살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유전적으로 정해진 인간의 자연수명은 마흔이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건강한 삶을 추구하되, 거기에 강박을 가지지는 말자. 내가 가진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서 병을 가지게 된 근원을 탐구해야겠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병 그 자체에 매몰되지 않은채로, 그 병을 품고 더 건강한 삶을 향해 살아내는 것도 필요하다.

콰이어트

내성적인가, 내향적인가

어렸을 때는 내 성격이 내성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어머니께서는 성격이 너무 내성적이니 좀 외향적으로 바꿔야한다고 하셨던 것 같고, 아버지께서는 사내 자식이 왜 그렇게 히매가리가 없냐고 종종 말씀하셨던 것 같다. 어머니는 심지어 좀더 못되 보이는게 낫다시며, — 그 때 우리 기준에서는 꽤 — 튀는 색인 주황색의 외투를 사주시기도 했다.

내 성격이 어땠기에?

내성적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의 성격이야 뻔하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은 몇몇 있지만, 반이 갈리면 굳이 다른 반으로까지 찾아가서 어울릴 생각은 하질 않는다.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는 사람이 있으면 한두발 물러서는 편이었고, 책을 — 지금보다도 훨씬 더 — 즐겨 읽었다. 나이가 들면서 성격이 크게 바뀐 것은 아닌데, 그래도 사람을 대하는 것이 조금은 편해졌다는 생각을 때로 한다. 여전히 서툴긴 하지만, 상대방의 주장이나 태도가 내 입자에서 불공정하다 느끼면 나도 강하게 나설 때도 있다.

나 스스로도 어느정도 인정하는 바라서, 내성적이라는 것을 크게 부정하고 살지는 않았지만, 대학에 입학하거나 직장을 잡기 위해서 지원서를 낼 때는 문제가 좀 달랐다. 그런데다가는 내성적이라고 쓸 수 없으니까. 내성적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단어다. 그렇다고 거짓말하고 싶은 생각도 없으니 내향적이라고 썼다. 내향적이라는 단어는 왠지 긍정적인 뉘앙스가 있어서 내 성격을 적당히 포장하기에 괜찮았다.

위로

내 성격을 포장할 단어를 찾았다는 것과 내 성격 그대로를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이다. 나는 그 이후에도 여전히 내 성격을 좀더 외향적으로 바꾸기 위해서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했고, 그래도 어렸을 때에 비하면 많이 외향적으로 바껴보이는 것을 긍정적인 성취 중의 하나로 삼았다. 이런 식이다.

“제 성격이 조금 내향적이긴 한데요, 예전에 비하면 많이 활달해졌어요.”

활달하다는 게 뭔가 싶긴 하지만.

그러다가 Susan Cain의 The power of introverts(내향성의 힘)이라는 TED 강의를 들으면서, 내 성격이 잘못된 것이어서, 혹은 열등한 것이기 때문에 고치거나 바꿔야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냥 다른 것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힘을 얻을 때, 나는 조용히 책이나 읽으면서 에너지를 채워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어울리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많은 사람과 부대낄 때 좀더 빨리 지치긴 하지만, 필요하면 어느정도는 그 자리에서 에너지가 점점 차오르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일 수도 있을 거다.

꽤 오래전에 들었던 강의여서 이제는 큰 맥락 정도 밖에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정도는 나에게 위안이 되었던 강의이기도 했다. 당시 유학간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껴야할 때여서 내 이런 성격이 더 불편하게 여겨졌던 시기다. 그래서 강의를 들으면서 내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결국은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안이함과 게으름이 문제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말로는 다 하기 힘들었던 이야기

강의를 잘 들었기에 굳이 책까지 읽을 필요가 있나 생각했다. 그래서 한참동안 읽지 않았다. 책 내용의 요점은 틀림없이 이해했다고 믿었으니까.

그러다가 리디북스에서 이 책, 콰이어트를 무료로 대여해주고 있는 것을 알게 되어 읽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자면 내가 처음 생각했던대로 TED 강의의 주제와 일치했다. 하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점은, 20여분의 강의로는 미처 다 담을 수 없는 이야기가 생각보다 많았다는 것이다.

책을 읽어 보고 느낀 것은 TED 강의는 커튼이 살짝 걷힌 창문을 통해서 이 집의 거실을 슬쩍 들여다 본 것 같다는 것이다. 창문을 기웃거려서는 거실조차도 자세히 살펴보기 어려울뿐더러, 집에는 거실만 있는 것도 아니다. 책은 마치 현관문을 활짝 열고 집 안으로 초대해서 방 여기저기를 둘러보라고 안내해준 것과 비슷했다.

책은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 수전 케인 본인의 이야기와 본인이 직간접적으로 전해들은 사람들의 이야기 — 경험과 전문가 등을 통해서 조사한 데이터가 교차하며 펼처져 있다. 이를테면, 본인의 경험을 먼저 말하고, 단지 자신이나 책을 읽는 당신만이 아니라 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것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통계로 알려주거나, 그러한 성격/행동의 과학적 배경을 알려주는 식이다.

1차적으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위로가 되어 준다는 것이다. 미국은 우리나라보다도 훨씬 외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여서인지, 성격이 외향적이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 죄의식까지 가지고 사는 사람도 꽤 많은가 보다. 그래서 이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설득한다.

서구권 만큼은 아니겠지만, 한국에 살면서도 내향적인 성격은 꽤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고속 성장기의 따라잡기의 영향일 수도 있고, 어쨌든 내향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보다 행동이 덜 적극적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유가 무엇이든 나를 포함해서 아마 꽤 많은 사람들이 성격을 개조해야 한다고 믿으며 살아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어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일단, 사람의 성격이 내향성과 외향성이라는 어느 극단 중의 하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 쪽 끝과 저 쪽 끝 사이에는 꽤 많은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사실 나도 내향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저자가 묘사하는 성격은 나와 많이 다르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러니, 성격의 두 측면이 무 자르듯이 나누어 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거 아니면 저것처럼 반대되는 두 개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도 아니다.

또한, 실제의 성격과 관계없이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 필요한 성격을 연기할 수 있다. 물론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는 없겠지. 뭐가 됐든 모름지기 처음이 가장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내 꿈을 위해서 피할 수 없다면? 내 본질을 잃어버리지만 않는다면 상황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되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어차피 사람은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아쉽게도 책을 끝까지 읽지는 못했다. 시간이 좀더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는 중에 대여 기간이 만료되어 버렸다. 책의 뒷부분은 내향적인 성격을 가진 자녀가 있을 때, 어떻게 소통하고 키워나가야할지에 대한 저자의 고민과 해답이다.

맺는 말

이 책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이 책에 여러가지 팁이 나오긴 하지만, 팁 때문에 이 책을 읽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나면 반드시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아, 내 성격이 나쁘거나 문제가 있는 건 아니구나..” 정도 생각할 수 있게 되면 충분하지 않은가 싶다.

사람은 종종 쉽게 할 법한 일도 ‘주변 사람이 나는 못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못하게 되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아니 그건 모르는 사람들 생각이고, 실제로 나같은 사람들 많은데, 의외로 특별한 거 뭐 없이 잘 하고 살잖아?’라는 생각 하나 정도만 남겨가도 책 읽은 보람이 꽤 있을 것 같다.

신영복의 “강의”를 읽고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 신영복 선생이 쓴 강의를 읽었습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사실 앞부분은 명확히 생각이 나지 않는 면도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어떠한 책이었다’하는 나름의 인상을 중심으로 독후감을 써두려 합니다.

책의 부제는 나의 동양 고전 독법으로 되어 있는데, 말 그대로 시경, 서경과 주역을 시작으로 논어, 맹자, 노자와 장자를 거쳐서 법가의 이론까지를 찬찬히 풀어서 설명해줍니다. 신영복 선생이 실제 대학교에서 교양 수업으로 강의하신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보니, 쉽게 읽히지는 않더라도 꾸역꾸역 읽어나갈만 합니다.

다만, 순수하게 동양 철학에 대한 입문서로 보기에는 어쩌면 조금 적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각각의 동양 고전에 대한 통상적인 이해를 쉽게 풀어 놓기보다, 까마득한 과거에 쓰여진 책을 지금 어떻게 읽고 해석할지에 대한 고민에 더욱 방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목적을 (그리고 시간적 제약도) 감안하여 각 고전을 전체적으로 해석하기 보다 신영복 선생이 각각의 고전을 해석하고 현 시대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받아들임에 있어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판단한 문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나름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동양 고전에 입문할 수 있게 해주는 의도가 명확한 입문서로 기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자가 오랜 글을 소개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관계입니다. 나와 너의 관계이고, 우리와 저들의 관계이기도 하면서 세상 만물 서로 간의 관계이기도 합니다. 처음에 서양 철학과 동양의 차이에 대해서, 서양은 존재론에 기반을 하고 있는 반면에 동양은 관계론에 더 높은 비중을 두고 있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실제 소개된 고전의 문구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사항들은 대체로 그러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동시에 생각이 드는 것은 신영복 선생은 동양 고전을 관계라는 관점에서 소개해주고 있는 것일 뿐만아니라, 오히려 고전을 통해서 지금 우리 시대에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피력하고 계시다는 거였습니다.

수천년 전에 쓰인 글이 지금 얼마나 큰 울림을 가질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도구와 문명 수준이 달라져도, 사람의 행동이 큰 틀에서는 어느 정도 반복된다는 것을 인정하면, 관계와 원리에 대한 과거의 숱한 고민들은 지금도 충분한 생각할 거리를 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짧게 본다해도 벌써 2004년에 쓰여져서 10년을 훌쩍 넘긴 이 책을 지금 읽으면서도, 그토록 과거에 있었던 고민과 사유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현재성을 가지고 있으니 만큼 이 책에서 지금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소개한 고전들도 충분한 현재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양 고전에 대해서 무지한 채, 저처럼 한 번 맛만 살짝 볼까 싶은 사람이 읽기에도 좋고, 이미 많이 고민해 본 후에 신선한 생각의 바람의 쐬고 싶은 분이 읽기에도 무리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살인자의 기억법: 소설과 영화

김영하와 이 소설의 팬들에게 있어서도 영화에 대한 평가는 꽤 크게 갈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꽤 지루하다는 평가도 종종 보였지만, 그래도 김영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기에 영화는 꽤 기대하며 봤다. 어쩌면 그렇게 크게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는 재미있었고 나름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도 든다.

스포일러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스토리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소설과 영화의 전개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읽은 지 조금 오래되어서 기억이 부정확할 수도 있지만, 소설에서는 영화처럼 극 초반부터 본인이 살인자임을 밝히지 않는다.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의 담담한 독백으로 소설이 서서히 진행되어 가고, 본인이 전직 연쇄살인마임은 중반이 지나서야 담담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이 사실이 드러나고나서 다시 책 앞 부분으로 돌아가서 몇 번 다시 읽은 기억이 난다. 주인공의 정체를 알고 나서는 똑같은 독백이 다르게 읽힌 다는 것이 책의 매력 중 하나이다. 그에 반해 영화는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살인자임을 확실하게 알려준다. 그 시점에서 주인공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사실 의미가 없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끝없이 이어지는 독백으로 알려준다. 소설도 독백의 형식이기도 하고, 주인공이 살이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원래 주변에 없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관객에게 너무 친절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주인공의 정체성에 대해 서서히 깨달아가는 바 없이, 곧바로 주인공이 살인자라는 사실을 못 박아 두고 여기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래서 소설과 영화의 장르도 달라졌다. 소설에서는 결국 주인공이 오래전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 외에 확실한 사실은 없다. 나의 주변을 멤도는 그 사람은 정말 살인자인가 경찰인가. 딸은 행복한 삶을 찾았나 내가 죽여버렸나. 최근의 살인 사건은 대체 누가 저지른 일인가. 주인공의 기억이 사라져 가면서 어떤 것도 선명하게 남지 않는다.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은 범죄소설과는 꽤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기억이 사라져 갈 때 나의 정체성은 과연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 꽤 극단적인 사례를 통해서 선명하게 보여주려는 것으로 읽혀진다. 그에 반해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확연히 스릴러 물로 보여진다. 오래전 아주 많은 사람을 죽인 타고난 살인자의 감각을 가진 주인공이 본능적으로 다른 살인범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살인범으로부터 사랑하는 딸을 지키기위한 사투를 벌인다. 이야기가 복잡하게 꼬이는 것은 이 탁월한 감각을 가진 살인마가 치매라는 것. 어느 순간 때때로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여기서 치매는 더 많은 사람을 죽여서 살인에 더 능숙한 킬러와 아직 젊고 경험이 부족한 킬러가 맞부딪칠 때, 나이로 인한 체력과 더불어 두 숙적의 힘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한다.

결국 소설과 달리 영화에서 치매는 어떤 특별한 사건이라기보다 유용한 소품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영화는 두 숙적의 대결로 치닫는 단선적인 이야기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경장 “안병만” 씨의 존재도 이런 종류의 영화가 주로 가지는 주인공의 조력자로 활약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죽는 그런 클리셰로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 소설의 재미를 기대하고 영화를 본 사람들이 재미없어하는 이유가 이런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앞에도 썼지만, 나는 관객에게 너무 친절하려고 노력한 독백이 감점요인이라고 느꼈고, 함께 영화를 본 아내는 왜 굳이 개그 욕심을 부렸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소설의 그 감각을 다시 느끼고 싶다면 아마 기대와는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새로운 소재(치매)를 활용한 범죄 영화로서 보자면 정말 재밌게 만든 영화이다.

1984년, 또는 1Q84년

최근 3권을 읽었다. 1, 2권을 읽은 것은 내가 군대에 있을 때였으니, 2권을 읽고 3권을 읽기까지 무려 6년 정도가 지났다. 그렇다보니 3권을 읽으면서 지금 어쩌다 이런 상황으로 온 것인지는 어느정도 생각이 났지만, 작은 내용까지 세세하게 생각이 나진 않았다. 3권을 너무 늦게 읽어서 아쉬운 점이랄까.

하루키의 미묘한 현실

처음 제목을 보고서는 이게 뭔가 했는데, 책을 조금만 읽고 일본어로 아홉까지만 셀 수 있으면 왜 저렇게 제목을 지었는지 이해가 된다. 그리고 심지어는 조금 노골적이라는 생각조차 들기도 한다.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작은 노르웨이의 숲이었고, 애프터 다크처럼 늦은 밤부터 새벽녘의 도시 모습을 가감없이 묘사한 소설도 있긴하지만, 내가 하루키의 소설에게서 가장 기대하는 것 중 하나는 묘하게 살짝 어긋나있는 현실의 묘사이다.

예를 들어, ‘양을 쫓는 모험’에서는 주인공과 대척하고 있는, 악이 형상화된 존재는 양의 모습을 띄고 있다.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원더랜드’에서는 주인공의 현실과 꿈이 번갈아 가며 진행되다가 어느순간 꿈과 현실이 맞닥뜨린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하루키의 소설에서는 “어느 평화로운 주말 이른 오후, 늦은 아침 겸 점심을 준비하며 화창한 날씨를 느낄 때, 문득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른다. 그래서 ‘이 시간에 누가 나를 찾지?’ 하는 의구심과 함께 문을 열어보면 염소의 머리를 한 누군가 문 앞에 서있는” 모습을 떠올릴 법한 장면이 종종 묘사되는 것이다.

완전히 다른 세계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꽤 노골적이고, 상당히 직선적이기도 하다. 심지어 주인공조차 이 세계가 현실의 그 세계 가 아님을 의식하고 있다. 하늘에는 두 개의 달이 떠서 독자에게도 그 사실을 끝없이 환기시키고, 리틀 피플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나타나 무표정하게 기계적인 모습으로 나를 불안에 빠트릴만한 일들을 하나씩 하고는 사라진다.

이야기에 특별한 반전은 없고, 익숙하게 느껴질 법한 장면도 종종 나오긴하지만, 두엇의 주요 등장인물의 관점을 번갈아 취하면서 이야기를 이끌고 가면서 한 번 씩 주의가 환기되기 때문에 특별히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형식이 많은 부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는 2권에서 끝났어도 충분히 괜찮을 법한 소설이라는 생각이다. 당시에 내가 들었던 소문은 원래 저자는 2권에서 끝내려 했는데, 독자들의 성화가 커서 3권을 써서 소설을 마무리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에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2권을 끝으로 소설을 열린 결말로 마무리 했어도 충분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내 인식 상으로는 끝난 소설이었고, 그래서 한참동안 3권을 찾아보지 않았다.

로맨스? 모험담? 풍자?

서평을 보면 이 이야기를 일종의 로맨스 소설로 보는 시각도 많은 것 같은데, 2권까지만 놓고 보면 두 주인공의 애착에 대한 이야기가 좀 있긴 하지만, 로맨스이기보다 빅 브라더와 대응되는 리틀 피플과 그들의 손에 조종되는 (오움 진리교를 연상시키는) 종교 단체와 그 이상한 세계에서 벗어나는 모험담이 중심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3권에서 두 주인공의 서로에 대한 인식이 점점 깊어지면서 다른 이야기가 끼어들 틈이 너무 좁아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끝으로 갈 수록 더 호흡이 빨라지고, 마지막까지도 모든 의문을 해소해주지는 않는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신영복 선생과 그 책의 유래에 대해서 알게 된 후로 선생의 책을 읽어보아야겠다고 계속 생각은 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그러다가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이미 많이 늦었지만, 더 늦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선생의 책 몇 권을 샀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읽기 시작한 것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전자책,종이책)이다.

이미 대부분 잘 알고 있겠지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신영복 선생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지인들이 묶어서 책처럼 만든 것이 시작이다. 나중에 서간을 더 모으고 따로따로 출간되었던 것들을 다시 묶어서 현재의 개정판이 나왔다. 내가 먼저 산 전자책 세 권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담론이고, 최근에 나온 마지막 강의는 책으로 사려고 마음먹고 있다. 구매한 책 중에서 이 책을 가장 먼저 보기 시작한 것은 물론 시기적으로 가장 앞서 있기도 하지만, 편지를 묶은 수필이다 보니 가장 읽기 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뜻밖에 책은 읽기가 쉽지 않았다. 문장 자체가 어렵진 않다. 신영복 선생은 어렵게 씀 직한 글도 쉽게 잘 풀어서 썼고, 쓸데없는 미사여구도 없어서 눈이 어지럽지도 않았다. 다만 책을 읽어나가기가 어려운 것은 그 편지에 녹아 있는 경험이나 생각의 깊이를 내가 도무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인 듯했다. 읽으면서 느껴지는 것은 선생이 참 맑으신 분이란 것이었고, 흔히 같은 물을 마셔도 소는 우유로 나오고 뱀은 독으로 나온다는 것처럼 나 같은 사람이 겪기엔 좌절과 증오만 더했을 법한 길고 긴 감옥 생활을 스스로 대학으로 만들고 깊은 성취를 이루었다.

책에 소개된 실물 편지의 글과 그림을 보면 그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기도 하고, 매우 사소하거나 아니면 오히려 기분 상할 법한 경험에서 아주 오래 남을 교훈을 찾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한 번 만 읽어서는 도저히 그걸 다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인상 깊었던 글 한 토막을 소개하자면, 책 초반의 청구회의 추억이란 제목의 편지글이다. 청구회는 대학 소풍 가는 길에 우연히 동행하게 된 어린 친구들과 친해지고, 몇 년에 걸쳐 교류한 것에 대한 추억을 적은 글인데, 읽어보면 선생이 원래 이렇게 맑은 사람이었구나 하는 것과 난 애초에 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면서 자존심과 옹고집은 몇 배 크지 않나 하는 반성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한 편으로 일종의 수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서간체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루이제 린저가 쓴 생의 한가운데가 문득 떠올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물론 생의 한가운데는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고, 이 책은 선생이 보낸 편지만을 모은 것이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편지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그런 인상을 받은 것 같다. 편지 하나하나 별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하나의 큰 흐름을 따라 진행되는 느낌. 어쩌면 그 끝을 이미 알고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전설이다. 영화와 소설

“나는 전설이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벌써 9년 전, 2007년에 영화가 처음 개봉했을 때, 바로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일단, 좀비 영화를 좋아하기도 했고, 윌 스미스라는 배우도 어느 정도는 재미가 보장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소설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일단 영화를 먼저 보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소설을 찾아서 읽어보았는데, 소설을 찾아본 이유는 1. 원작소설이 있는 영화가 재미있으면, 왠만하면 소설도 읽어보자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2. 영화의 끝이 조금 애매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시 영화에 조금 관심을 가졌다면 누구나 알겠지만, 영화에는 두 가지 엔딩이 있다. 하나는 주인공인 윌 스미스가 죽고, 생존자가 백신을 들고 살아남은 사람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윌 스미스가 살아서 그곳에 가는 것. (내가 본 것은 윌 스미스가 죽는 쪽이다) 두 경우 모두 주인공이 인류를 위해서 매우 인상적인 — 충분히 전설적이라고 말할 법한 — 활약을 펼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이런 경우에 본인이 “나는 전설이다.”하고 확신에 차서 말하지는 않는다. 과학자가 아직 제대로 임상을 거치지도 않은 백신을 손에 쥐고 “나는 전설이다”하고 외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색하다.

그러다가 소설을 읽어보면, 소설을 끝까지 읽어보면 그 제목이 납득이 간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딱히 의사나 과학자는 아니고, 주인공을 찾아오는 마지막 생존자 따위도 없다. 사실 소설에는 마지막 남은 구인류와 과거의 인류와 대척하는 신인류가 있다. 일종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나타난 신인류는 우리가 생각하는 뱀파이어의 정의에 부합하게 낮에는 활동을 하지 못한다. 오직 밤에만 활동할 수 있고, 낮에는 가사상태에 빠지는데, 마지막 인류인 주인공은 낮에 가사상태의 좀비를 사냥하고, 밤에는 집으로 돌아와 철통같이 방어한다.

주인공을 찾아왔던 여성은, 마지막 연민을 가지고 와서 그에게 떠나라 한 것이지만 그는 거부하고, 어느날 밤 좀비들의 총공격으로 요새는 함락되고, 그는 좀비 아니 신인류의 포로가 되어 사형대에 선다. 사형대에 오르기전 연민을 가졌던 여성은 그에게 독약을 준다. 고통없이 죽을 수 있도록.

사형대에 서서 그는 자신을 애워싼 사람들을 둘러보고 그들의 두려움에 가득찬 시선을 보면서 깨닫는다. 나는 전설이다. 저 사람들에게 나는 전설로 남을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난다.

영화와 소설은 큰 이야기 흐름이 비슷한 듯 보이지만 크게 다르다. 일단 영화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영웅담을 따라간다. 인류가 멸망할 위기에 처했을 때, 인류의 구원자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과학 (혹은 이성)의 승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주인공의 생존 여부에 상관없이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그에 반해서 소설은 일종의 창세기를 그린다.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인류의 멸망이라는 비극이나, 또 다른 의미에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낸 새로운 인류의 시작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새로운 인류의 시작점에서 그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악마이다. 어쩌면 그는 마지막 남은 인류의 희망이었을지 모르지만, 새로운 시대에서는 전설 속의 마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나는 전설이다”를 계기로 그의 단편선을 사서 읽어보았다. 거창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이야기에 반해 분량은 그리 많지 않고, 이 유명한 소설의 제목을 그대로 책 제목으로 따온 두꺼운 책의 나머지 부분은 리처드 매드슨이 쓴 다른 단편 소설들로 채워져 있다. 이 외의 다른 소설들도 기묘한 매력이 있다. 한 권 사서 읽어보아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Getting Things Done을 읽고

David Allen이 쓴 GTD를 읽고 나서 처음에는 GTD 입문을 위한 가이드 비슷한 것을 써볼까도 생각해 봤습니다. 하지만, 그런 목적이라면 Clien 커뮤니티에서 이렇게 잘 정리된 글이 있고, 기술적인 것은 일단 GTD를 적용해 보겠다고 마음먹고 찾으면 얼마든지 찾아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책 자체에 대해서 소개를 해볼까 합니다.

시작하며

Getting Things Done: The Art of Stress-Free Productivity(이하, "GTD")는 2002년에 초판이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끝도 없는 일 깔끔하게 해치우기라는 제목으로 2011년에 번역서가 나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번역서로 읽어도 큰 상관은 없겠지만 (번역서를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영어로 독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싶으시면 원서를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15년 3월에 개정판이 나와서 처음 책이 나온 이후 10여년 간의 사례와 스마트폰 등에 대한 내용들이 추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GTD의 핵심 아이디어가 변한 것은 아니지만 개념을 이해하는데, 그리고 삶의 많은 측면이 디지털화된 내 삶에 GTD를 적용해 보는데 더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왜 GTD를 읽었나.

사실 GTD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것은 4~5년 전 아이폰을 처음 사고 얼마 안되었을 때였습니다. 이리저리 앱들을 구경하다가 2Do라는 앱을 처음 구입했고, 그 다음에는 호기심에 Things를 구입해서 만지작 거리기 시작하면서 대체 이 프로그램이 근거하고 있는 GTD가 뭔지 관심을 가져봤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조금 뒤져봤고, 나름대로 GTD를 이해하긴 했습니다만, 그 깊이는 사실 매우 얕아서 "뭔가 해야 할 일이 생각나면 그 때 그 때 적어뒀다가, 시간 날 때 '컨텍스트'라는 것에 맞춰서 정리를 하고, 시간이 되면 하면된다."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나름 앱을 활용한다고 하며 살았지만, 여전히 일을 미루고, 깜박하는 일들이 생기기도 하며, 뭐가 잘못되었나 고민만 하고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초에 David Allen의 인터뷰를 들으면서 GTD의 개정판 혹은 후속작이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 번 이 모든 일들의 뿌리가 된 책을 직접 읽어봐야 겠다 생각했습니다. 마침내 두어달 전에 아마존에서 전자책으로 구해 내어 봤습니다.

GTD라는 철학

사실 GTD는 많은 부분이 다가오는, 갑자기 생겨나는 할 일을 처리하는 기술에 대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내가 맞닥뜨린 이 수많은 일들과 내 삶의 여러 측면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GTD에서 강조하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GTD는 프랭클린 코비의 "중요한 것을 먼저하기"의 방식과 대비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일의 우선순위를 무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스트레스 없는 생산성의 향상

스트레스는 우리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일부이기는 하지만, 그 중에는 분명 굳이 받을 필요가 없는 쓸데 없는 스트레스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불필요한 스트레스의 상당부분이 미뤄둔 할일, 막상 할 수 있을 때는 생각이 안나다가 할 수 없는 상황에서만 생각이 나서 신경 거슬리는 일들, 하긴해야하는데 어떻게 시작해야할 지 답답한 그런 일들에서 오지 않나 생각합니다.

GTD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일단 가장 처음이 중요한데요. 저자는 최대 이틀 정도는 비워둘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틀 정도 다른 일은 비워두고 지금 필요한 일들을 적어둡니다. 디지털 시대니 물론 여러 할 일관리 앱이나 메모앱을 이용해서 적어둘 수도 있고, — 저자가 권장하듯이 — A4 사이즈 종이 한 장에 할 일 하나씩을 적어서 나름대로 정해둔 임시 박스 (또는 Inbox)에 담아둡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사소하고 쓸데없어 보인다고 제쳐두는 것이 아니라 일단 머리에 떠오르는 일들은 모두 적어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 2분안에 — 끝 낼 수 있는 일이면 바로 끝내버리고 다음 일로 넘어갑니다.

그 다음에는 이렇게 적어둔 일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적당한 곳에 분류하는 일입니다. 내가 어떤 상황 (Context)에서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집? 회사? 마트에서? 노특북이 꼭 필요할까? 아이패드는? 그 사람이 없으면 안되겠지? 그리고 언제 이 일을 할 수 있을지를 정해서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내가 적절한 상황, 이 일을 해야할/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을 때 내게 알려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개념은 프로젝트(Project)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기에 프로젝트라하면 최소 2주 이상은 걸리고, 참여하는 사람이 여럿에 할일도 잔뜩 있어야 될 것 같지만 저자가 정의하는 프로젝트는 이와 다릅니다: 일을 완료하는데 두 개 이상의 행동이 필요한 모든 일들.
일을 완료한다는 것은 지금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변화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욕실이 더럽기 때문에 욕실청소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욕실 청소를 하는 것도 프로젝트가 될 수 있겠지요. 청소를 하려고보니 솔과 세제가 없다면 먼저 솔과 세제를 사고, 실리콘의 곰팡이나 물 때가 낀 곳에 세제를 뿌려두고, 몇 시간 뒤 솔로 문지르는 일들이 각기 다른 행동으로 하나의 프로젝트(욕실을 깨끗하게 만든다)를 완료하는 것입니다.

주의해야할 것 중의 하나는 행동을 적당한 수준에서 잘 쪼개둘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위의 욕실 청소라는 프로젝트를 프로젝트로 생각하지 않고, 그냥 욕실 청소라는 하나의 행동으로만 생각한다면, 매번 일요일 아침에 청소를 하려고 마음을 먹을 때마다 집에 솔과 세제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음으로 미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몇 가지 문제가 더 생깁니다. 여러 행동으로 이루어진 일을 하나의 할일로만 둔다면 조금 지칠 때 간단한 행동을 처리해 두고, 정신적으로 여유가 될 때 복잡한 일을 할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언제나 그 일을 해야한다는 것을 떠올릴 때마다 그 일을 완료하기 위해서 해야할 그 많은 행동의 양에 압도당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일을 미루는 겁니다. 저처럼…)

그리고 일을 잘게 쪼개 둘 때의 다른 장점 하나는 —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 일을 하나하나 끝내는 즐거움을 알 수 있다는 것이죠. 해도해도 끝나는 것 같지 않은 일을 하는 것보다. 일을 하나씩 할 때마다 한 단계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사실 우리들은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중요한 측면을 놓치지 않는 것

GTD의 방법론을 프랭클린 코비의 방법론과 비교하면서 하는 말 중의하나가

프랭클린 코비는 중요한 일에 집중해서 우선순위를 정해두고 그 우선순위가 가장 높을 일을 먼저하는 것인 반면, GTD는 중요도에 상관없이 닥치는 대로 해치우는 것이다. 그러니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이 밀려오는 주니어 레벨에서는 GTD가 적절하지만, 해야할 일이 많은 와중에 여러 일의 우선 순위를 살펴 업무를 처리해야하는 고위의 사람들에게는 코비 방식이 더 적당하다.

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GTD 방식이 그저 눈 앞의 일들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 해야할 일들을 떠올릴 때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그 일이 완료되었을 때의 이상적인 모습이 무엇인지 떠올리는 것입니다. 먼저 완료된 모습을 떠올린 다음에 이 목표에 닿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역순으로 찾아내는 것이죠. 그리고 당연히 GTD에서도 지금 중요한 일 또는 프로젝트를 덜 중요한 것들과 구분할 수 있도록 합니다. 사실 지금 급하지 않은 것은 나중에 적당한 때에 할 수 있게 시간을 정해두거나, 아니면 언젠가 할 일정도로 따로 빼 둘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책에서도 Vision, 목표, 프로젝트 등등으로 내 주변의 일들을 나누어 볼 수 있는 일종의 필터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달성해야할 목표들을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행되어야 할 프로젝트들을 정의한 다음에, 각 프로젝트를 완료하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정의해서 적당한 컨텍스트나 날짜에 분류해 두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분류를 통해서 일뿐 아니라 나 자신과 가족을 위해 중요한 일에도 좀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마치며…

물론 이 책을 한 번 읽는 것이 더 여유롭고 생산적인 인생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저자는 자기 책은 여러 번 읽어야하고 읽을 때마다 배우는게 있을 거라고 자랑하네요) 일단 저부터도 책을 거의 다 읽은 시점부터 회사 업무가 시즌에 들어가서 제대로 체계를 갖춰볼 생각은 아직 못해봤어요. 1월 정도에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아직 제대로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이 책을 읽은 뒤로 계속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2분 법칙다음 행동(Next Action)이라는 원칙입니다. 2분 법칙은 위에 잠깐 썼듯이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면 미뤄두지 말고 처리해버린다는 것(반드시 2분일 필요는 없습니다.)이고, 다음 행동은 내가 원하는 형태로 프로젝트를 종료하기 위해서 지금 이 행동이 끝나고 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 찾아두겠다는 것입니다.

한 때 여러 종류의 자기 계발서에 탐닉하기도 했었습니다만 그런 책은 읽을 때만 그럴 듯하고 읽고 나면 허무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읽을 때는 좋은 말인데, 그래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하느냐에 대해서는 지침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지요.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이 만들어 낸 방법론을 설명하는 책이면서 동시에 그 방법론을 토대로 수많은 사람들을 컨설팅하면서 얻은 임상 지식을 풀어둔 책이기도 하기에, 그 원칙을 상대적으로 쉽게 따라해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당장 인생이 바뀌기를 기대하지 마세요. 이 방법론을 적용하면서 가장 힘든 일은 할 일들의 체계를 주기적으로 관리하고 업데이트하는 것이고, 실제로 완전히 습관화되기 전에는 자꾸 이 일 자체를 미루고 싶어집니다. 저자도 이 방법론을 제대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최소 2~3년은 몸에 익어야 된다고 말하고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론을 통해 기존의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서 좀더 적극적으로 내 주변의 여러 일들을 처리하도록 스스로를 독려할 수 있게 되는 점에서 단기적인 가치도 있어 보입니다.

 

학생가의 살인

그저 핑계일 뿐이겠지만 요즘에는 책을 많이 읽지 못한다. 특히 예전에는 출퇴근 시간에 책을 읽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이패드와 아이폰이 생긴 이후로 RSS로 뉴스를 보거나, Instapaper에 저장해둔 글을 읽게 되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이 책은 부산에 놀러갔다가 보수동 책방 거리에서 기념으로 사왔다. 뉴스나 짧은 아티클들을 읽다보면 책처럼 긴 글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책들 중에서도 기분을 전환하고 싶을 때는 추리소설 만한 것이 없다. 그리고 요즘 추리소설을 읽는다 치면 자연스럽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고르게 된다.

추리소설

어쩌면 나 혼자 생각일 수도 있지만 보통 추리소설이라하면 트릭의 장치와 그 문제를 해결해 가는 추리 기법이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사람들의 심리나 행동도 어느정도 묘사가 되지만, 대부분은 사건에 개연성을 줘서 독자들이 거부감 없이 사건에 몰입하도록 하기 위한 부수적인 도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갑작스레 사건이 발생하고, 현장의 모습은 자연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현장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몇 가지 빈틈 – 힌트 – 가 존재하고 그것을 이리저리 잘 맞춰보면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그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해답을 찾아내면서 자연스럽게 범인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마지막에 범인의 모티브를 말하는 것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끝내야할 필요 때문일 뿐이다.

추리보다는 인물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도 이러한 순서를 어느정도는 차근차근 따른다. 사건이 발생하고, 언뜻 불가능해 보이는 현장의 모습이 미스테리를 부풀린다. 퍼즐을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사건의 본질과 범인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추리물과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이 소설은 사건의 트릭 그 자체보다는 그 사건을 발생시킨 사람들의 심리에 더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말할 생각은 없지만, 이 사건의 중심이 되는 미스터리도 정교한 퍼즐처럼 잘 짜여졌다고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 몰입이 되는 것은 작가가 자연스럽게 “퍼즐을 풀어보라”가 아닌 왜 주인공은 범인을 찾으려고 하는가, 왜 살인자는 그 사람들을 죽였을까. 왜 희생자는 죽어야 했는지 우리가 계속 질문을 던지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사람 이야기

결국 이 소설을 끝까지 읽고 보면, 죽인 사람도 죽은 사람도 꼭 그래야만하는 필연성은 없었다. 그냥 무덤덤하게 본다면, 왜 굳이 저런 일로… 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우리가 평소 견디고 대처해오던 이상의 무언가가 갑자기 우리 앞에 닥쳤을 때, 나도 모르게 우린 틀린 생각을 확고하게 믿게 되지 않을까.

 

내 안에 숨겨진 최대치의 힘을 찾는 법: 마스터리의 법칙을 읽고

이 책은 이 전에 비슷한 유형의 책 — 전쟁의 기술, 권력의 법칙 —을 쓴 로버트 그린(Robert Greene)의 최근작이다. 그의 전작들도 꽤 재미있게 읽었었기 때문에 이 책이 나왔을 때 크게 고민하지 않고 바로 구입하여 얼마 전 모두 읽을 수 있었다(꽤 오래 읽었다). 책에 대해서 쓰기 전에 먼저 밝혀두고 싶은 것은, 내가 자기계발서를 그다지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소개하는 것은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이 책의 구성

  1. 이 책은 전체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은 다시 몇 개의 절로 나누어진다. 책의 제목이 말해 주듯이 이 책의 목적은 독자가 마스터리(Mastery)라는 궁극적인 단계에 도달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에 따라 각 장도 1장 “인생의 과업을 발견하라”부터 마지막 장인 “직관과 이성의 행복한 결합, 마스터리”에 이르기까지의 단계를 차례대로 설명하고 각 단계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2. 각 장 별로도 비슷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각 장은 실제 인물을 통한 예시를 보여주고, 그 인물이 마스터리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수련을 거쳤는지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각 단계에서 배운 것 중에 조심해야 할 내용을 뒤집어보기라는 절을 통해서 보여준다.

이 책의 가치

  • 마스터리라는 것이 명확하게 정의될 수 없는 개념이지만, 나름대로 여러가지 과학적인 근거 등을 내세워서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각 단계에 이른 사람이 어떠한 상태인지 그 상태를 극복하고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말해주고 있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고, 그 책에서 제안하는 것을 따라 시도해보느냐는 언제나 독자의 문제이긴 하지만, 최소한 이 책에서는 읽고 시도해 볼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은 들만한 것들을 제시해 주고 있다.

  • 처음 이 책을 펼치면서도 익숙하게 느껴질 만큼 전작들에서도 자주 활용한 방법인데, 이 작가는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혹은 아직 살아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끌어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인물들에 대해서 서술할 때는, 같은 사건이라도 주제 별로 중요하게 봐야할 점을 설명해주고, 그 사건 또는 인물에서 어떤 점을 배울 수 있는지 설명한다.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그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수련을 쌓아서, 어떠한 형태의 마스터리에 도달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장애물을 극복했는지이다.

  • 각 절의 앞머리에 있는 인용문도 이 책을 읽는 작은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적당한 분량의 해당 주제와 관련이 있는 유명인의 글을 인용해와서, 지금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힌트를 준다. 그리고 인용문 자체로도 한 번 씩 봐두면 좋을 만한 글들이고, 때로 따로 보관해 두고 자주 읽었으면 싶은 글들도 있어서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마음에 안드는 점은…

  • 무엇보다도 역시 이런 종류의 책의 문제점은, 읽을 때는 다 맞는 말이고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다 읽고 나면 그래서 어쩌라는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실용적으로 익힐 수 있는 기술에 대해 설명한 것도 아니고, 책의 내용도 그 자체로는 그냥 옳으신 말씀이다 보니 읽을 때는 꽤 흥미진진한 것 같고 매끄럽게 읽히지만 다 읽고나면 좀 허무하다 싶은 것도 사실이다.

  • 이 책에서는 몇 가지 저자 본인의 주장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였는데, 그러한 근거가 그럴 듯하지만 엄밀하게 증명이 되었는지, 증명이 가능한지는 약간의 의구심이 남는다. 그런데 이 부분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작 애매한 부분은 역사적 인물이 겪은 사건들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다. 사람도 실재하고, 그 사건도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지만, 그 와중에서 인물의 심리묘사는 상당부분 소설적인 상상력으로 비춰지는 것이 사실이고, 그 사건에 배울 수 있는 교훈또 때로는 억지로 끼워맞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많은 사람이 매력을 느낄만한 주제에 대해서 상당히 매끄럽게 풀어내었고, 또 저자가 설명하는 마스터리라는 궁극적 단계와 이에 도달하기 위해 각 단계에서 수련할 사항 등은 독자에게 장•단기적인 목표를 제시해 줄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자가 여러가지 실제 사례에서 뽑아내려는 교훈과 상관없이 어떤 어려움을 극복한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읽는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