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의 “강의”를 읽고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 신영복 선생이 쓴 강의를 읽었습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사실 앞부분은 명확히 생각이 나지 않는 면도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어떠한 책이었다’하는 나름의 인상을 중심으로 독후감을 써두려 합니다.

책의 부제는 나의 동양 고전 독법으로 되어 있는데, 말 그대로 시경, 서경과 주역을 시작으로 논어, 맹자, 노자와 장자를 거쳐서 법가의 이론까지를 찬찬히 풀어서 설명해줍니다. 신영복 선생이 실제 대학교에서 교양 수업으로 강의하신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보니, 쉽게 읽히지는 않더라도 꾸역꾸역 읽어나갈만 합니다.

다만, 순수하게 동양 철학에 대한 입문서로 보기에는 어쩌면 조금 적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각각의 동양 고전에 대한 통상적인 이해를 쉽게 풀어 놓기보다, 까마득한 과거에 쓰여진 책을 지금 어떻게 읽고 해석할지에 대한 고민에 더욱 방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목적을 (그리고 시간적 제약도) 감안하여 각 고전을 전체적으로 해석하기 보다 신영복 선생이 각각의 고전을 해석하고 현 시대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받아들임에 있어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판단한 문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나름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동양 고전에 입문할 수 있게 해주는 의도가 명확한 입문서로 기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자가 오랜 글을 소개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관계입니다. 나와 너의 관계이고, 우리와 저들의 관계이기도 하면서 세상 만물 서로 간의 관계이기도 합니다. 처음에 서양 철학과 동양의 차이에 대해서, 서양은 존재론에 기반을 하고 있는 반면에 동양은 관계론에 더 높은 비중을 두고 있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실제 소개된 고전의 문구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사항들은 대체로 그러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동시에 생각이 드는 것은 신영복 선생은 동양 고전을 관계라는 관점에서 소개해주고 있는 것일 뿐만아니라, 오히려 고전을 통해서 지금 우리 시대에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피력하고 계시다는 거였습니다.

수천년 전에 쓰인 글이 지금 얼마나 큰 울림을 가질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도구와 문명 수준이 달라져도, 사람의 행동이 큰 틀에서는 어느 정도 반복된다는 것을 인정하면, 관계와 원리에 대한 과거의 숱한 고민들은 지금도 충분한 생각할 거리를 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짧게 본다해도 벌써 2004년에 쓰여져서 10년을 훌쩍 넘긴 이 책을 지금 읽으면서도, 그토록 과거에 있었던 고민과 사유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현재성을 가지고 있으니 만큼 이 책에서 지금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소개한 고전들도 충분한 현재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양 고전에 대해서 무지한 채, 저처럼 한 번 맛만 살짝 볼까 싶은 사람이 읽기에도 좋고, 이미 많이 고민해 본 후에 신선한 생각의 바람의 쐬고 싶은 분이 읽기에도 무리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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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신영복 선생과 그 책의 유래에 대해서 알게 된 후로 선생의 책을 읽어보아야겠다고 계속 생각은 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그러다가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이미 많이 늦었지만, 더 늦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선생의 책 몇 권을 샀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읽기 시작한 것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전자책,종이책)이다.

이미 대부분 잘 알고 있겠지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신영복 선생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지인들이 묶어서 책처럼 만든 것이 시작이다. 나중에 서간을 더 모으고 따로따로 출간되었던 것들을 다시 묶어서 현재의 개정판이 나왔다. 내가 먼저 산 전자책 세 권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담론이고, 최근에 나온 마지막 강의는 책으로 사려고 마음먹고 있다. 구매한 책 중에서 이 책을 가장 먼저 보기 시작한 것은 물론 시기적으로 가장 앞서 있기도 하지만, 편지를 묶은 수필이다 보니 가장 읽기 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뜻밖에 책은 읽기가 쉽지 않았다. 문장 자체가 어렵진 않다. 신영복 선생은 어렵게 씀 직한 글도 쉽게 잘 풀어서 썼고, 쓸데없는 미사여구도 없어서 눈이 어지럽지도 않았다. 다만 책을 읽어나가기가 어려운 것은 그 편지에 녹아 있는 경험이나 생각의 깊이를 내가 도무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인 듯했다. 읽으면서 느껴지는 것은 선생이 참 맑으신 분이란 것이었고, 흔히 같은 물을 마셔도 소는 우유로 나오고 뱀은 독으로 나온다는 것처럼 나 같은 사람이 겪기엔 좌절과 증오만 더했을 법한 길고 긴 감옥 생활을 스스로 대학으로 만들고 깊은 성취를 이루었다.

책에 소개된 실물 편지의 글과 그림을 보면 그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기도 하고, 매우 사소하거나 아니면 오히려 기분 상할 법한 경험에서 아주 오래 남을 교훈을 찾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한 번 만 읽어서는 도저히 그걸 다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인상 깊었던 글 한 토막을 소개하자면, 책 초반의 청구회의 추억이란 제목의 편지글이다. 청구회는 대학 소풍 가는 길에 우연히 동행하게 된 어린 친구들과 친해지고, 몇 년에 걸쳐 교류한 것에 대한 추억을 적은 글인데, 읽어보면 선생이 원래 이렇게 맑은 사람이었구나 하는 것과 난 애초에 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면서 자존심과 옹고집은 몇 배 크지 않나 하는 반성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한 편으로 일종의 수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서간체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루이제 린저가 쓴 생의 한가운데가 문득 떠올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물론 생의 한가운데는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고, 이 책은 선생이 보낸 편지만을 모은 것이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편지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그런 인상을 받은 것 같다. 편지 하나하나 별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하나의 큰 흐름을 따라 진행되는 느낌. 어쩌면 그 끝을 이미 알고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