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Astra

영화에 대한 이야기다보니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래드 피트가 처음으로 출연한 SF 영화라는 광고문구로 인스타그램에서 영화를 처음 접했다. 그 광고에서는 영화의 끝에 충격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식으로 말했던 것 같다.

SF, 브래드 피트, 충격적인 결말.

재미없다고 말하기는 또 애매한 영화이지만, 최소한 충격적인 결말이라 할 만한 것은 없다. 오히려 이렇게 평범하고 무난한게 마무리된다는 것이 충격이라면 충격이랄까.

이야기의 시작

영화는 가까운 미래를 다루고 있다. 거기서 인류는 달과 태양계 안의 가까운 행성 — 화성 — 까지는 진출해 있고, 어떤 개척자는 저 멀리, 해왕성까지에도 발을 디뎠다. (착륙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주인공 — 로이 맥브라이드 — 이 일하는 낮은 궤도의 우주 안테나에서 갑작스래 고전압이 흐르며 큰 사고 발생한다. 알고 보니 이 사고는 전 지구적으로 발생하였는데, 진원지는 바로 해왕성이다. 그곳에 우주의 지적 생명체를 찾아 나섰던 로이의 아버지가 아직 살아 있으며, 무언가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그 사고는 로이의 아버지가 타고 나선 우주선의 동력원이었던 반물질이 불안정해져서 나타난 것으로 방치하면 전 지구적인, 인류의 크나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그렇기에, 로이는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하여, 아직 작동하는 장거리 통신장비가 있는 화성으로 향한다.

관찰자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보다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내도 영화를 보는 것이 마치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하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나도 영화에 빠져든다거나, 영화의 관객이 된 것이 아니라 사건의 관찰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영화는 시종일관 로이에게 집중한다. 그래서 영화가 기본적으로는 로이를 관찰하는 3인칭 시점에서 진행되긴 하지만, 로이가 잡히지 않는 화면은 거의 없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이고, 때때로 로이의 시선에서 다른 사람을 비추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연출은 영화 안에서 내가 로이의 시선으로 다른 이를 바라보기보다는 로이의 심리를 더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처럼 작동한다고 느껴진다.

통상 다른 영화에서라면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법한, 긴장감이 흐르고 깜짝 놀랄 일이 생기는 상황에서도, 감독은 시간을 정직하게 그대로 흐르게 하면서 그냥 이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어느샌가 영화를 보면서 긴박감 넘치는 사건에 놀라거나 몰입하기보다, 저 상황 자체를 곰곰이 따지면서 바라보게 된다.

‘저럴 수 밖에 없었을까,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혹시 다르게 행동했다면 어땠을까’

흐르는 강물처럼

영화가 시작하고 시간이 어느정도 흐르고 나니, 문득 흐르는 강물처럼이 생각났다. 어렸을 때 내가 무척 좋아했던 영화였다. 그 영화의 브래드 피트도 다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헌신했다. 따라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막연히 멋있어 보이는 사람.

그 영화에서도 등장 인물 각각의 목적과 서사는 있었지만, 영화를 관통하는 커다락 목표, 어떤 대의같은 것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평범하지는 않은 어떤 가족의 분투기였고, 특히 유별난 한 아들은 분투의 끝에 더욱 유별난 죽음을 맞았던 그래서 주변 어느 사람도 잊을 수 없게된 그런 이야기였다.

이 영화도 그러하다. 어쩌면 평범함이란 것에서 아주 크게 벗어나는 가족은 아니었을지 모르겠으나, 아버지의 꿈은 그런 작은 그릇에 담기기에는 너무 원대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 갈 수 있는 우주의 끝으로 향했고, 어째서인지 그 아들은 감정을 잘 내보이지 않는 목석같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영화의 시작을 보면 아마 이혼을 앞두고 있었던 것 같다. 별일없이 지나갔다면 아마 이혼하고, 지구 바로 바깥의 가까운 우주에서 군인으로서의 삶을 평범하게 해쳐 나갔을 것이다.

흐르는 강물처럼과 다른 점은 아버지 — 가 일으킨 사고 — 가 로이가 여행을 시작하게 한 동력이었다는 것이다. 아마 군의 상층부에서 로이를 콕 집어서 가라고 하지 않았다면, 아버지와 관련된 일임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쉽사리 떠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로이는 출발했고, 여행을 이어나갈 자신의 이유를 찾아낸 것처럼 보인다.

귀향

여행이라는 것은 결국 결핍이 있기에 떠난 것이고, 돌아올 때는 적든 많든 무언가가 채워졌기에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끝없이 여행을 떠나거나, 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결핍이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 착각해서 결핍되지 않은 것을 밀어넣거나, 채우면 채울 수록 구멍이 더 넓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로이는 불가능해 보였던 긴 여행 끝에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아무래도 길었던 여행에서 감정을 다시 채워 온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아니라면 아버지가 빼앗아 갔던 것을 힘겹게 추격해서 마침내 되찾아 왔거나. 예전 어디선가 모든 남자는 결국 아버지를 극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읽었던 것 같기도 한데, 로이는 영화의 끝에서 마침내 아버지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위대한 아버지일 수록 극복의 과정은 힘이 들고, 극복해내지 못한 자식은 어떤 식으로든 존재의 위기를 겪는다.

아무튼 마침내 로이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영화의 끝에서 보이는 로이는 영화가 시작할 때처럼 메말라 있지 않다. 관계를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으로 보이고, 상대의 가치에 대해서 깊은 주의를 기울인다. 삶이 다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단지, 로이의 깨달음을 위해 어처구니 없이 죽어간 화성발 우주선의 승무원들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