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한 권의 책을 읽는 방법

책을 많이 읽으면 좋다고는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특히 요새는 책으로 엮여져 나온 것만이 아니더라도 읽을 것들이 워낙 많죠. 스마트폰의 자그마한 화면 내지 태블릿으로 트위터나 페이스북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짧은 기사나 게시판 글들을 많이 읽기 때문에 실제로 사람들이 읽는 활자량으로만 따지면 예전 사람보다 훨씬 많은 글을 읽는다는 것도 어디선가 봤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으로 대표되는 긴 글을 읽는 것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니콜라스 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란 책에서 화면으로 보는 것은 대량의 정보를 빠르게 흡수하는 목적으로는 도움이 되지만 집중력이 약해지고, 긴 문장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에 애를 먹게 될 수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모니터로 글을 읽는 것도 피할 수 없고 필요하지만 책을 되도록 많이 읽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있겠습니다.

역시 책을 자주 읽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은 제한적인데 반해 읽고, 보고, 생각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책을 빨리 읽는 것은 중요한 기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래에 소개된 방법은 하버드 비지니스 리뷰에 소개된 글을 요약한 것입니다. 이 방법이 적용될 수 있는 책은 소설같은 문학작품 보다는 과학 교양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문학의 경우에는 구절 하나하나가 중요한 의미를 띄고 있을 뿐 아니라 문장의 아름다움 그 자체도 충분히 즐길거리가 되어줍니다. 그에 반해서 지식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글은 대개 저자의 주장이 있고, 주장의 근거가 있죠. 저자의 주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그 주장이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근거를 자세히 읽어볼 필요는 없을 수 있습니다. 주장이 이해가 가지 않거나, 반대의견을 생각하고 있고, 근거에 대해서 충분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 때만 읽으면 됩니다.

  1. 저자에서 시작하세요. 책을 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면, 이 책에 저자가 남겨놓은 편견이나 그의 관점을 고려하며 글을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저자 소개나 저자의 말을 읽고, 혹시 가능하다면 인터뷰도 한 번 찾아보세요.
  2. 책 제목과 부제, 책소개, 그리고 목차를 읽으세요. 그러한 것들은 이 책이 말하려는 것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줍니다. 아마 이 정도만 되어도 — 구체적인 것을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 다른 사람에게 이 책이 무엇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지 정도는 설명해 줄 수 있을 겁니다.
  3. 책의 도입부와 결론을 먼저 읽으세요. 글쓴이들은 대개 첫 단락에서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고, 예시를 세우고, 마지막에 결론을 맺습니다. 이 두 부분을 단어 하나하나 (하지만 빠르게) 읽으세요. 이 저자가 어떻게 논의를 진행할 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4. 이제 각 장을 읽어볼 차례입니다. 각 장의 제목을 일고, 앞 부분의 몇 문장 혹은 몇 페이지 정도를 읽어보세요. 그리고 그 장의 마지막 단락을 읽어보세요. 저자가 그 장에서 하고자하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이해가 충분히 가지 않는다면, 관련 단락 전체를 읽어보세요. 저자의 주장을 이해하고 동의한다면? 다음 장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5. 마지막은 목차로 마무리하세요. 책을 모두 읽었다면, 다시 목차로 돌아와서 목차의 각 항목마다 머릿속으로 내용을 요약해 보세요.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잡아보세요. 아마 모든 것이 잘 이루어졌다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이 머리에 들어올 겁니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문학은 이런 식으로 읽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용서라면 이 방법을 잘 적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요새는 매달 구독 형식으로 일정금액을 내고 사용하는 소프트웨어(Software as a Service)가 많은데요. 문득문득 그러한 소프트웨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데 들어가는 더 큰 대가는 바로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저 방법론을 처음 접하고 나서는 지금 읽는 책에 한 번 적용을 해보고 있습니다. 조건에 무척 부합하는 책인데도, 사실 처음부터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네요. 앞을 보고, 뒤를 보고, 잠시 고민하다가 중간을 빠르게 읽어보는 일이 반복되고 있지만, 그래도 시간이 많이 절약되는 것은 느낍니다. 뭐든 처음부터 바로 잘 되는 일은 흔치 않을 것입니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면 한 번 시도해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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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ing Things Done을 읽고

David Allen이 쓴 GTD를 읽고 나서 처음에는 GTD 입문을 위한 가이드 비슷한 것을 써볼까도 생각해 봤습니다. 하지만, 그런 목적이라면 Clien 커뮤니티에서 이렇게 잘 정리된 글이 있고, 기술적인 것은 일단 GTD를 적용해 보겠다고 마음먹고 찾으면 얼마든지 찾아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책 자체에 대해서 소개를 해볼까 합니다.

시작하며

Getting Things Done: The Art of Stress-Free Productivity(이하, "GTD")는 2002년에 초판이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끝도 없는 일 깔끔하게 해치우기라는 제목으로 2011년에 번역서가 나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번역서로 읽어도 큰 상관은 없겠지만 (번역서를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영어로 독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싶으시면 원서를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15년 3월에 개정판이 나와서 처음 책이 나온 이후 10여년 간의 사례와 스마트폰 등에 대한 내용들이 추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GTD의 핵심 아이디어가 변한 것은 아니지만 개념을 이해하는데, 그리고 삶의 많은 측면이 디지털화된 내 삶에 GTD를 적용해 보는데 더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왜 GTD를 읽었나.

사실 GTD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것은 4~5년 전 아이폰을 처음 사고 얼마 안되었을 때였습니다. 이리저리 앱들을 구경하다가 2Do라는 앱을 처음 구입했고, 그 다음에는 호기심에 Things를 구입해서 만지작 거리기 시작하면서 대체 이 프로그램이 근거하고 있는 GTD가 뭔지 관심을 가져봤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조금 뒤져봤고, 나름대로 GTD를 이해하긴 했습니다만, 그 깊이는 사실 매우 얕아서 "뭔가 해야 할 일이 생각나면 그 때 그 때 적어뒀다가, 시간 날 때 '컨텍스트'라는 것에 맞춰서 정리를 하고, 시간이 되면 하면된다."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나름 앱을 활용한다고 하며 살았지만, 여전히 일을 미루고, 깜박하는 일들이 생기기도 하며, 뭐가 잘못되었나 고민만 하고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초에 David Allen의 인터뷰를 들으면서 GTD의 개정판 혹은 후속작이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 번 이 모든 일들의 뿌리가 된 책을 직접 읽어봐야 겠다 생각했습니다. 마침내 두어달 전에 아마존에서 전자책으로 구해 내어 봤습니다.

GTD라는 철학

사실 GTD는 많은 부분이 다가오는, 갑자기 생겨나는 할 일을 처리하는 기술에 대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내가 맞닥뜨린 이 수많은 일들과 내 삶의 여러 측면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GTD에서 강조하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GTD는 프랭클린 코비의 "중요한 것을 먼저하기"의 방식과 대비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일의 우선순위를 무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스트레스 없는 생산성의 향상

스트레스는 우리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일부이기는 하지만, 그 중에는 분명 굳이 받을 필요가 없는 쓸데 없는 스트레스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불필요한 스트레스의 상당부분이 미뤄둔 할일, 막상 할 수 있을 때는 생각이 안나다가 할 수 없는 상황에서만 생각이 나서 신경 거슬리는 일들, 하긴해야하는데 어떻게 시작해야할 지 답답한 그런 일들에서 오지 않나 생각합니다.

GTD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일단 가장 처음이 중요한데요. 저자는 최대 이틀 정도는 비워둘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틀 정도 다른 일은 비워두고 지금 필요한 일들을 적어둡니다. 디지털 시대니 물론 여러 할 일관리 앱이나 메모앱을 이용해서 적어둘 수도 있고, — 저자가 권장하듯이 — A4 사이즈 종이 한 장에 할 일 하나씩을 적어서 나름대로 정해둔 임시 박스 (또는 Inbox)에 담아둡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사소하고 쓸데없어 보인다고 제쳐두는 것이 아니라 일단 머리에 떠오르는 일들은 모두 적어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 2분안에 — 끝 낼 수 있는 일이면 바로 끝내버리고 다음 일로 넘어갑니다.

그 다음에는 이렇게 적어둔 일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적당한 곳에 분류하는 일입니다. 내가 어떤 상황 (Context)에서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집? 회사? 마트에서? 노특북이 꼭 필요할까? 아이패드는? 그 사람이 없으면 안되겠지? 그리고 언제 이 일을 할 수 있을지를 정해서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내가 적절한 상황, 이 일을 해야할/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을 때 내게 알려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개념은 프로젝트(Project)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기에 프로젝트라하면 최소 2주 이상은 걸리고, 참여하는 사람이 여럿에 할일도 잔뜩 있어야 될 것 같지만 저자가 정의하는 프로젝트는 이와 다릅니다: 일을 완료하는데 두 개 이상의 행동이 필요한 모든 일들.
일을 완료한다는 것은 지금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변화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욕실이 더럽기 때문에 욕실청소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욕실 청소를 하는 것도 프로젝트가 될 수 있겠지요. 청소를 하려고보니 솔과 세제가 없다면 먼저 솔과 세제를 사고, 실리콘의 곰팡이나 물 때가 낀 곳에 세제를 뿌려두고, 몇 시간 뒤 솔로 문지르는 일들이 각기 다른 행동으로 하나의 프로젝트(욕실을 깨끗하게 만든다)를 완료하는 것입니다.

주의해야할 것 중의 하나는 행동을 적당한 수준에서 잘 쪼개둘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위의 욕실 청소라는 프로젝트를 프로젝트로 생각하지 않고, 그냥 욕실 청소라는 하나의 행동으로만 생각한다면, 매번 일요일 아침에 청소를 하려고 마음을 먹을 때마다 집에 솔과 세제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음으로 미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몇 가지 문제가 더 생깁니다. 여러 행동으로 이루어진 일을 하나의 할일로만 둔다면 조금 지칠 때 간단한 행동을 처리해 두고, 정신적으로 여유가 될 때 복잡한 일을 할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언제나 그 일을 해야한다는 것을 떠올릴 때마다 그 일을 완료하기 위해서 해야할 그 많은 행동의 양에 압도당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일을 미루는 겁니다. 저처럼…)

그리고 일을 잘게 쪼개 둘 때의 다른 장점 하나는 —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 일을 하나하나 끝내는 즐거움을 알 수 있다는 것이죠. 해도해도 끝나는 것 같지 않은 일을 하는 것보다. 일을 하나씩 할 때마다 한 단계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사실 우리들은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중요한 측면을 놓치지 않는 것

GTD의 방법론을 프랭클린 코비의 방법론과 비교하면서 하는 말 중의하나가

프랭클린 코비는 중요한 일에 집중해서 우선순위를 정해두고 그 우선순위가 가장 높을 일을 먼저하는 것인 반면, GTD는 중요도에 상관없이 닥치는 대로 해치우는 것이다. 그러니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이 밀려오는 주니어 레벨에서는 GTD가 적절하지만, 해야할 일이 많은 와중에 여러 일의 우선 순위를 살펴 업무를 처리해야하는 고위의 사람들에게는 코비 방식이 더 적당하다.

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GTD 방식이 그저 눈 앞의 일들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 해야할 일들을 떠올릴 때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그 일이 완료되었을 때의 이상적인 모습이 무엇인지 떠올리는 것입니다. 먼저 완료된 모습을 떠올린 다음에 이 목표에 닿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역순으로 찾아내는 것이죠. 그리고 당연히 GTD에서도 지금 중요한 일 또는 프로젝트를 덜 중요한 것들과 구분할 수 있도록 합니다. 사실 지금 급하지 않은 것은 나중에 적당한 때에 할 수 있게 시간을 정해두거나, 아니면 언젠가 할 일정도로 따로 빼 둘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책에서도 Vision, 목표, 프로젝트 등등으로 내 주변의 일들을 나누어 볼 수 있는 일종의 필터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달성해야할 목표들을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행되어야 할 프로젝트들을 정의한 다음에, 각 프로젝트를 완료하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정의해서 적당한 컨텍스트나 날짜에 분류해 두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분류를 통해서 일뿐 아니라 나 자신과 가족을 위해 중요한 일에도 좀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마치며…

물론 이 책을 한 번 읽는 것이 더 여유롭고 생산적인 인생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저자는 자기 책은 여러 번 읽어야하고 읽을 때마다 배우는게 있을 거라고 자랑하네요) 일단 저부터도 책을 거의 다 읽은 시점부터 회사 업무가 시즌에 들어가서 제대로 체계를 갖춰볼 생각은 아직 못해봤어요. 1월 정도에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아직 제대로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이 책을 읽은 뒤로 계속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2분 법칙다음 행동(Next Action)이라는 원칙입니다. 2분 법칙은 위에 잠깐 썼듯이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면 미뤄두지 말고 처리해버린다는 것(반드시 2분일 필요는 없습니다.)이고, 다음 행동은 내가 원하는 형태로 프로젝트를 종료하기 위해서 지금 이 행동이 끝나고 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 찾아두겠다는 것입니다.

한 때 여러 종류의 자기 계발서에 탐닉하기도 했었습니다만 그런 책은 읽을 때만 그럴 듯하고 읽고 나면 허무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읽을 때는 좋은 말인데, 그래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하느냐에 대해서는 지침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지요.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이 만들어 낸 방법론을 설명하는 책이면서 동시에 그 방법론을 토대로 수많은 사람들을 컨설팅하면서 얻은 임상 지식을 풀어둔 책이기도 하기에, 그 원칙을 상대적으로 쉽게 따라해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당장 인생이 바뀌기를 기대하지 마세요. 이 방법론을 적용하면서 가장 힘든 일은 할 일들의 체계를 주기적으로 관리하고 업데이트하는 것이고, 실제로 완전히 습관화되기 전에는 자꾸 이 일 자체를 미루고 싶어집니다. 저자도 이 방법론을 제대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최소 2~3년은 몸에 익어야 된다고 말하고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론을 통해 기존의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서 좀더 적극적으로 내 주변의 여러 일들을 처리하도록 스스로를 독려할 수 있게 되는 점에서 단기적인 가치도 있어 보입니다.

 

학생가의 살인

그저 핑계일 뿐이겠지만 요즘에는 책을 많이 읽지 못한다. 특히 예전에는 출퇴근 시간에 책을 읽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이패드와 아이폰이 생긴 이후로 RSS로 뉴스를 보거나, Instapaper에 저장해둔 글을 읽게 되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이 책은 부산에 놀러갔다가 보수동 책방 거리에서 기념으로 사왔다. 뉴스나 짧은 아티클들을 읽다보면 책처럼 긴 글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책들 중에서도 기분을 전환하고 싶을 때는 추리소설 만한 것이 없다. 그리고 요즘 추리소설을 읽는다 치면 자연스럽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고르게 된다.

추리소설

어쩌면 나 혼자 생각일 수도 있지만 보통 추리소설이라하면 트릭의 장치와 그 문제를 해결해 가는 추리 기법이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사람들의 심리나 행동도 어느정도 묘사가 되지만, 대부분은 사건에 개연성을 줘서 독자들이 거부감 없이 사건에 몰입하도록 하기 위한 부수적인 도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갑작스레 사건이 발생하고, 현장의 모습은 자연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현장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몇 가지 빈틈 – 힌트 – 가 존재하고 그것을 이리저리 잘 맞춰보면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그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해답을 찾아내면서 자연스럽게 범인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마지막에 범인의 모티브를 말하는 것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끝내야할 필요 때문일 뿐이다.

추리보다는 인물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도 이러한 순서를 어느정도는 차근차근 따른다. 사건이 발생하고, 언뜻 불가능해 보이는 현장의 모습이 미스테리를 부풀린다. 퍼즐을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사건의 본질과 범인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추리물과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이 소설은 사건의 트릭 그 자체보다는 그 사건을 발생시킨 사람들의 심리에 더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말할 생각은 없지만, 이 사건의 중심이 되는 미스터리도 정교한 퍼즐처럼 잘 짜여졌다고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 몰입이 되는 것은 작가가 자연스럽게 “퍼즐을 풀어보라”가 아닌 왜 주인공은 범인을 찾으려고 하는가, 왜 살인자는 그 사람들을 죽였을까. 왜 희생자는 죽어야 했는지 우리가 계속 질문을 던지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사람 이야기

결국 이 소설을 끝까지 읽고 보면, 죽인 사람도 죽은 사람도 꼭 그래야만하는 필연성은 없었다. 그냥 무덤덤하게 본다면, 왜 굳이 저런 일로… 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우리가 평소 견디고 대처해오던 이상의 무언가가 갑자기 우리 앞에 닥쳤을 때, 나도 모르게 우린 틀린 생각을 확고하게 믿게 되지 않을까.

 

FiftyThree에 대한 작은 생각

FiftyThree라는 회사를 알게된 것은 Paper라는 아이패드용 그림 앱을 통해서였다. 이 Paper라는 앱은 무료로 다운 받을 수 있고, 펜 하나를 이용할 수 있는데 추가적인 도구는 돈을 더 내면 구매할 수 있다. 사실 나는 이런 식을 Freemium 앱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어지간히 마음에 들어도 인앱 구매가 필요하면 그냥 지워버리는 경우가 많다. 차라리 처음부터 제 값 치르고 사는 것이 마음이 편해서이다. 하지만 이 앱은 내가 몇 번 써보다가 반해서 추가적인 도구들을 구매한 몇 안되는 아이패드용 응용프로그램 중의 하나이다.

어떻게 발전해 오고 있나.

지우개를 포함하여 펜, 볼펜, 연필, 아웃라이너, 붓 등은 처음부터 미리 정해진 제한된 종류의 색과 함께 구매 후 사용할 수 있었다. 이후 여러가지 색을 조합할 수 있는 믹서 기능이 추가되었고, 확대 기능도 매우 세련된 방식으로 들어갔다. 이 앱은 감압 기능이 있는 터치펜 중에서 포고 플러그를 지원했는데, 일반적인 터치펜 만으로도 이미 이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으로는 거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놀라운 것은 이 회사가 소프트웨어 제작자로 그치지 않고,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Book이었다.

맞다. 보통 명사로 책__이다. 책은 당연히 종이__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고. Paper 내에서 인쇄를 원하는 그림 묶음을 골라서 그 중에 15장을 고르면 그걸 엮어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준다. 나도 하나 만들어서 여자친구에게 선물해 줬는데, 바로 우편으로 보내서 아쉽지만 실물을 보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이 회사가 단순한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하드웨어까지 제작하는 — 직접 만드는 것은 아니더라도 — 실제로 Book도 Moleskin과의 협업으로 제작된다 — 회사가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Book을 제작하기 시작한 다음에는 Pencil이란 것을 만들어서 발표하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Paper에 최적화된 터치펜이다. 팜 리젝션 기능이 지원되며 뒷면은 지우개이고, 펜슬을 연결한 채로 손으로 그림을 문지르면 실제로 물감이나 펜을 손으로 문지른 듯한 효과(Blend)가 나타난다. 최근 iOS 업뎃으로 펜촉부분의 굵기가 다른 부분을 이용해서 감압기능 없이 굵기를 다채롭게 조정할 수도 있게 되었다.

최근에는 Mix라는 이름의 공유의 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이 곳에는 온전히 내가 그린 그림을 올려서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이 만든 작품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그림을 이용해서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나는 실력이 워낙 일천하여 믹스에 그림을 올리는 경우는 잘 없지만 다른 사람의 작품과 그 변주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 자주는 아니지만 — 간혹 이것으로 나름대로 그림연습을 하며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사용하는 동안 즐거운 기분을 안겨 주는 프로그램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

FiftyThree는 최근의 업데이트로 페이퍼를 완전히 무료화하였다. 기존에는 인앱구매를 통해 돈을 내고 잠금을 풀거나 펜슬을 구매해서 동기화 해야만 모든 도구를 사용할 수 있었다. 모든 도구를 구매하고, 거기다가 펜슬까지 구매한 입장에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발표였지만 이로서 이 회사가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겉핥기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Platform: 식상한 단어이기도 한데,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입에 올리고 있고 또 중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도 한 자리 껴보려고 한다. 믹스는 창작품을 만들고 공유하는 아주 새로운 방식의 네트워크이다. 물론 사진이든 그림이든 내 작품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은 적지 않다. 하지만, Creative Commons 정신에 이토록 충실하게 입각해서, 나와 다른 사람의 작품을 자유롭게 변주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혹시 다른 예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최근 트위터 피드를 보면 커다란 행사가 있을 때, 전문적인 카투니스트 등을 초빙해서 페이퍼를 통해 그림을 그리고 트위터와 믹스를 통해 공유하도록 하면서 사람들에게 페이퍼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 유형의 회사: IT의 발전과 더불어 유형적인 것보다도 무형적인 것의 가치가 엄청나게 성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면 그렇기 때문에 유형적인 것의 가치는 여전히 엄청나다. 나만해도 잘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앱 하나가 10달러가 넘으면 심각하게 고민을 하지만,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만원에 산다면 그만큼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는 만질 수 없고 다른 하나는 만질 수 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유형의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한 기업의 성장에 있어서도 엄청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Fiftythree가 소프트웨어 회사를 넘어 실물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이 이 회사의 성장에도 많은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리라고 믿는다.

결론

모든 종류의 신생 기업들이 이런 성장 방식을 따라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스타트업 회사들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이런 성장방식이 다 맞다고 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Fiftythree의 성장 전략은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다. 만약 이 회사가 페이퍼라는 기반없이 펜슬을 개발해서 판매하고자 했다면,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내 경험으로 펜슬은 분명 잘 만들어진 블루투스 터치펜이지만, 페이퍼 외에서는 기능이 상당히 제약된다. 물론 이 기능에 대한 API를 공개하지 않아서 일 수도 있으나, 페이퍼라는 앱이 없었다면 그러한 기능에 대한 수요조차도 접하기 어려웠으리라고 본다. 바로 얼마전에 53은 세 번 째 모델의 펜슬을 출시했다. 내부에 금 소재를 채택해서 성능이 더 좋아졌다고 한다. 누가 이 제품을 살까? 페이퍼를 이용해 그린 그림을 믹스에 열성적으로 올리는 사람들일 것이다. 왜냐면 다른 앱에서 쓸 수 있는 정도의 기능으로는 펜슬을 구매하는 것은 틀림없는 낭비일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처럼 디자인에 꽂혔다면 논외다)

53은 페이퍼라는 앱을 통해서 $80에 달하는 펜슬이라는 블루투스 터치펜을 구매할 다수의 잠재고객을 확보하는 전략을 —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아닐지라도 — 수립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앱을 유료로 판매했을 뿐 아니라, 간간이 Book을 판매할 수도 있었으니 여러모로 성공적인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